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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토리텔링

[2022 평가지원단 연수] 사이언스토리텔링, 내 수업의 성장기

by 사이언스토리텔러 2022.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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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너무 어렵고 따분해요.."

쉽고 재미있는 과학 수업? 그건 영화나 드라마의 잘생기고 예쁜 주인공이 하는 아름다운 사랑처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허구에 지나지 않았다. 쉽고 재미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놀이이지 배움이 아니다. 배움은 고통이다. 배움은 어렵고 유쾌하지 않다. 역사 이래로 무엇인가를 배워 몸에 익히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항상 어려운 작업이었다. 즉,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은 배움에 뒤따라오는 고통이다. 물론 누군가는 쉽고 재미있는 수업이 있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쉽고 재미있는 수업에 목매지 않기로 했다. 쉽고 재밌음만이 수업의 지향점이 아니라는 생각을 심은 이후로 "그렇다면 내 수업은 어떤 바를 지향해야 할까?"라는 고민이 싹트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기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쉽고 재미있는 수업을 위해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수업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학생들의 흥미를 돋우고 학습 동기를 자극하는 콘텐츠 확보가 우선순위였다. 나는 주로 다양한 분야의 책과 신문 기사 및 칼럼에서 괜찮다 싶은 내용이라면 모조리 긁어 모아 곳간에 쌀을 쌓아놓듯 '에버노트'란 메모 프로그램에 저장해놓는다.

에버노트에 저장해놓은 수업자료

이를 4년 가까이 해오면서 느꼈던 건 이렇다. '정말 정보는 차고 넘치는구나.. 자칫하다 내가 이 거대한 정보의 망망대해에서 허우적대다 휩쓸릴 수 있겠는걸? 하물며 나도 그런데.. 학생들은 오죽할까?' 나는 거대한 풍랑을 헤쳐 나아갈 수 있는 나침반과 저어갈 노, 즉 나만의 줏대와 사유가 필요했다. 내가 필요했듯이 학생들에게도 그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내 수업의 지향점이었고, 그로 인해 나는 수업이 쉽고 재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부터 초연해질 수 있었다.

과학과 인문학

수년간 다양한 분야의 책과 칼럼을 읽고 스크랩해놓은 정보를 나만의 방식으로 소화하여 과학에 잘 녹아들 수 있게 다듬는 글쓰기를 하다 보니 분절돼있다고 생각했던 과학 개념들 사이에도 서사가 있음을, 과학에도 사람 사는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사실 과학은 인간의 뇌가 만든 독특하면서도 지극히 인간적인 산물이다. 과학적 관찰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을 다루고, 과학 실험은 가능한 모든 현실 세계를 규명하며, 과학 이론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현실 세계를 다룬다. 인문학은 이 세 수준을 모두 포괄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무한히 많은 모든 환상 세계까지 다룬다. 따라서 과학과 인문학은 철저히 호혜적인 관계에 놓여있다.

과학 교과서, 검은 글씨가 채우지 않은 하얀 여백 어딘가에 숨어있는 인문학을 살펴볼 수 있었던 건 '독창적인 사유에서 비롯한 비유'였고 이러한 감식안을 학생들이 갖추기를 바랐다. 그 새로운 시각으로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적 구조 접속을 찾아내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과학이 과학에만 한정된다는 낡은 생각을 버리고 새로운 지식 창조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낯선 생각에 익숙해지기를 바랐다. 그 바람은 '사이언스토리텔링'이란 나만의 콘텐츠를 기획하도록 이끌었다.

사이언스토리텔링 (Science + Story-telling)

과학과 인문학이 서로 호혜적인 관계라면 과학을 인문학처럼 서사가 있는 방식으로 전달해보자는 것이 '사이언스토리텔링'의 기본 골자이다. 서사, 스토리텔링의 힘은 굉장하다. 단순히 대기 오염의 위험에 대한 내용을 팩트로만 제시했을 때는 학생들 대부분이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 반면 대기 오염 때문에 건강이 악화된 제빵사가 오염으로부터 부당한 이득을 챙긴 적대자에 대항해 불공정한 싸움을 한다는 서사가 함께 제시됐을 때는 학생들이 내용을 더욱 효과적으로 기억한다. 이처럼 청자는 메시지를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전달받을 때, 그리고 이야기 속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할 때 더욱 강렬한 반응을 보인다.

그렇다면 어떤 이야기가 강렬한 동일시 반응을 이끌어낼까? 스스로의 인생과 관련하여 얻을 수 있는 조언이나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공감과 위로 및 격려 등 살아가며 겪고 느끼게 되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지 않을까. 쉽지 않은 현실이지만서도 내일에 대한 낙관과 오늘보다 더 잘 살아내기 위한 몸부림은 '나 좀 괜찮은 사람이야'라 말할 수 있는, 즉 자존감의 나무에서 맺어지는 열매들이다. 자존감이란 응당 나 스스로의 내면에 침잠하여 나를 돌아보고 내가 주변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끊임없이 살펴봐야 쑥쑥 자라날 수 있다. 결국 인문학적 성찰이야말로 그 누구보다 하루를 잘 살아내기 위해 애쓰는 학생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기에 과학의 서사가 향하는 종착지엔 인문학이 있어야 했다. 그를 통해 과학이 내 삶, 과거와 미래 그 어딘가에 걸터있다는 걸 들려주고 싶었다. 과학 지식이 과학에만 머무르지 않고, 인생 전반을 아우르는 삶의 지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음악의 색깔로 수업을 색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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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가 방탄소년단의 'Dynamite'를 듣고 '핵융합'을 떠올리며, 브레이브 걸스의 '롤린'에서 '운동량 보존 법칙'을 찾고, 문문의 '비행운'으로 '단열 과정'을 노래할 수 있을까?

이따금씩 들려오는 노래의 가삿말을 찬찬히 곱씹어보면 대개가 사람이 살아가며 느끼는 감정과 생각에 대한 이야기였고, 다양한 노래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각기 다채로운 비유로 표현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과학과 인문학을 대중가요 위에 올려놓고, 그들이 어떤 비유적 관계에 있는지를 밝혀보기로 했다. 그 관계에서 피어오르는 새로운 사유는 나만의 독보적인 콘텐츠가 피어나도록 했다. 노래가 주선한 과학과 인문학의 색다른 만남은 수업에 나만의 색깔을 칠해주었다.

소통의 창구, 블로그

학생은 강의 콘텐츠 전달을 통해서만 배우는 건 아니다. 강의는 서로 얘기를 나누고, 헛소리도 하고, 의도하지 않은 엉뚱한 얘기로 번지는 과정에서 더 배우는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남녀 간의 만남도 한번 사귀어보자고 정면으로 스펙 교환할 때 사랑이 싹트는 게 아니라 의외의 순간에 사랑의 감정이 생기듯, 배움의 순간도 원래 준비해온 콘텐츠를 단순 전달하는데서 생기지 않을 경우가 훨씬 많다. 이러한 것들은 일방향 전달이 아닌 쌍방향 소통에서 기대할 수 있는 효과이다.

사이언스토리텔링은 학생들과 소통하고픈 나의 로망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그러한 소통의 창구로써 블로그만한 좋은 플랫폼은 없다고 생각했다.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으면 언제든지 들어올 수 있는 개방적인 공간이다 보니 학습지에 비해 시공간적 제약이 덜했다. 무엇보다 블로그는 내 콘텐츠가 수업 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을 넘어 24시간 내내 끊임없이 학생이 소비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했다. 그만큼 다양한 피드백을 제약 없이 받을 가능성이 농후해졌고, 이는 내 콘텐츠가 발전할 수 있는 기회 역시 무궁무진해짐을 뜻했다. 

콘텐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댓글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기능 또한 블로그의 장점이었다. 나는 일부러라도 학생들이 콘텐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댓글로 기록하도록 장려했다. 그렇게라도 학생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면 소통에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바랐던 점은 학생들로 하여금 어떤 계기로든 자신이 썼던 기록을 다시 보게 됐을 때 과거의 자신과 연결되는 경험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이 오묘한 경험에서 비롯된 낯선 느낌이 새로운 사유 및 동기의 밑거름이며, 이 모든 것이 과거의 기록에서 기인됨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렇듯 기록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힘을 학생들 스스로 느끼고, 자신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실천해나가기를 바랐다. 

기록이 모든 것을 완성하고 있다.

파동은 주변으로 퍼져가며 에너지를 전달하는 형식으로써 다른 파동과 만나면 간섭 현상을 일으킨다. 나는 그저 학생의 파동과 서로 작용하여 간섭 현상을 일으키는 하나의 파동일 뿐이다. 우리의 파동이 만나 서로 작용하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이런 간섭 현상으로 학생들 각각은 내 콘텐츠에서 저마다 다른 의미를 발견하길 바랐다. 궁극적으로 각자의 교양과 기억, 그리고 독특한 감수성에 맞추어 달리 해석되는 의미들이 주변에 선한 영향력으로 퍼져가기를 바랐다.

 

돌아보면 학생에게 유의미한 수업이 무엇일지 고민하며 시작했던 기록의 습관은 정말 사소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소한 습관의 파동은 에버노트, 블로그, 노래란 파동들과 간섭을 일으키며 '사이언스토리텔링'이란 무늬로 지금의 수업관을 장식해주었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기록은 나라는 파동이 유지될 수 있도록 가슴을 떨리게 해 주었고, 가끔 회의감과 무기력함에 흔들렸던 나를 잡아주는 기틀이 되어 주었다. 나는 이 모든 과정을 겪어오며 사소함이 결코 사소함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이 프레젠테이션은 내가 깨달았던 걸 학생들 뿐만이 아니라 선생님들 역시 알게 된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기획한 것이다.

 

이렇듯 모든 것은 기록으로부터 시작되고 기록은 모든 것을 완성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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