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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토리텔링

사건의 지평선, 가사를 해석하며 과거의 연애와 담담히 이별하는 법을 배우다.

by 사이언스토리텔러 2022.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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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사라진 별의 자리 아스라이 하얀빛

지구로부터 5500만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블랙홀 M87. 연구진은 M87 주변에서 왜곡된 빛의 조각들을 일일이 모아 950억㎞에 달하는 블랙홀의 그림자를 찾아냈다.

별은 한없이 팽창하다가 핵융합의 재료가 소진되면, 끝없이 수축한 뒤 생애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블랙홀이 된다. 별의 엄청났던 질량이 사람의 손바닥만한 크기에 압축되다 보니 블랙홀의 중력은 매우 강하다. 빛조차도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별이 사라진 자리, 그 근처를 아른거리던 빛은 아스라이 흔적을 남기고 블랙홀 내부 어딘가로 사라진다. 그래서 블랙홀은 보이지 않는 존재다. 다만 빛이 남긴 흔적을 통해 블랙홀의 존재를 가늠할 뿐이다. 어디선가 전해져 오는 낯익은 향기가 무의식 깊숙한 곳의 추억을 아스라이 떠오르게 하듯이.

아낌없이 반짝였던 시간이 옅어져 가더라도

한때 반짝였던 과거의 시간은 희미한 추억이 되어 내 안에 살아 숨쉬듯이, 찬란하게 빛났던 별의 시간도 블랙홀 어딘가에 머물러 살아 숨쉬고 있다. 그곳이 어딜까?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중력이 큰 곳에서 시간은 천천히 흘러간다. 만일 중력이 무한대로 큰 곳이 있다면 그곳의 시간은 천천히 흐르다 못해 정지해버릴 것이다. 이와 같이 시간이 옅어지며 멈춰버리는 곳을 '사건의 지평선'이라 한다. 

빛과 시간, 모두 멈춰버리는 사건의 지평선

자연에서 가장 빠른 건 빛이기 때문에 한 영역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정보는 빛을 통해 다른 영역으로 전달된다. 그러므로 빛의 이동에 제한이 생긴다면 정보 전달에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극단적으로 빛을 통한 정보가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빛을 통한 정보가 도달할 수 없는 시공간의 경계, '사건의 지평선'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흔히 지평선 하면 멀리 땅 아래로 태양이 넘어가서 태양이 보이지 않게 되고, 지평선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가게 되면 그 너머에서 어떤 사건들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더불어 '사건의 지평선'에서는 곧게 나아가던 시간의 흐름마저 일단락되기 때문에 그 너머와의 어떠한 상호 작용도 무의미해진다.

서툴렀던 과거의 인연은 시간 속에 점점 옅어져서 아득한 기억의 지평선 너머 아스라이 흩어진다.

같은 시간이 흘러도 내 기억은 추억의 중력이 짓누르는 영겁의 시간을 경험한다. 기억의 지평선을 넘어가는 순간, 기억은 그와 함께였던 시간의 시작부터 끝까지, 무한한 시간의 파노라마를 동시에 관찰하게 된다. 

 

그러나 과거의 연인과는 더 이상 상호 작용을 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헤어진 연인이나 사랑하는 가족, 친했던 친구, 반려동물 등 영원할 것 같고 익숙했던 존재들을 기억의 지평선 너머로 보내줄 줄도 알아야 한다.

물론 말이 쉽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세상의 전부와도 같았던 그들과의 관계에 종지부를 찍는다는 건 내 세상이 끝난 것만 같은 고통이다.

여긴, 서로의 끝이 아닌 새로운 길 모퉁이

그러나 이별 뒷면에 자리했던 절망과 미련, 후회는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거품처럼 씻겨 내려가고, 거품이 꺼진 자리에 그들과 함께 보냈던 시간의 조각들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음을 마주하게 된다. 끝이 마무리되는 지평선에서 새로운 내일이 떠오르듯이, 무서웠던 이별을 받아들임으로써 시간의 끝을 매듭짓고, 시간의 편린들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조각함으로써 새로운 시작을 도모하는 것은 좀 더 성숙한 나로의 도약이다.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참고 견뎌온 시간이 꽃이 되고, 이따금 불어오는 세월의 향기에 하나 둘 추억이 떠오르면 그 시절의 인연에 대한 그리움과 고마움에 잠시 웃어보지만, 그래도 이제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저기, 사라진 별의 자리
아스라이 하얀빛
한동안은 꺼내 볼 수 있을 거야

 

아낌없이 반짝인 시간은
조금씩 옅어져 가더라도
너와 내 맘에 살아 숨 쉴 테니

 

여긴, 서로의 끝이 아닌
새로운 길 모퉁이
익숙함에 진심을 속이지 말자

 

하나 둘 추억이 떠오르면
많이 많이 그리워할 거야
고마웠어요

그래도 이제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윤하 - 사건의 지평선

https://youtu.be/TDU8U-0Y4Q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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