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오죠
우린 시들고 그리움 속에 맘이 멍들었죠
파란 눈물에 파란 슬픔에 길들여져
파랗게 물들어 시린 내 마음
너는 떠나도 난 그대로 있잖아
빅뱅 - BLUE 中
겨울이 떠나가고 봄이 찾아오면 만물이 피어오르며 주위에 생동감이 만연해진다. 그러나
연인이 떠나간 빈자리에 찾아오는 그리움은 시들어버려 피어나지 않을 옛사랑에 대한 향수만 자극할 뿐.
황량한 겨울과 같은 나에게 싱그러운 봄은 언제 찾아올까? 정녕 봄이 오긴 하는 걸까?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에 따라오는 답답함과 슬픔에 짓눌린 마음은 파랗게 멍들어간다.
파랗게 물들어 시린 마음, 파란 눈물, 파란 슬픔, 이처럼 멜랑콜리를 파랑에 비유하게 된 기원은 무엇이었을까?
블루의 멜랑콜리
19세기 초반, 독일에서는 '베르테르 복장'을 하는 것이 금지됐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출간된 지 수십 년이 지나도록 소설 속 주인공 베르테르를 흉내 내 자살하는 젊은이들이 여전히 많았기 때문이다. 이때 '베르테르 복장'이란 파란색 연미복에 노란색 조끼를 뜻한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발표될 즈음, 파랑은 독일 젊은이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는 색이 되었다. 독일 낭만주의자들은 파랑을 멜랑콜리 색으로 숭배하며 자신들의 상징으로 여겼다. 파랑은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하늘과 바다의 색이었기에 더욱 간절했다. 독일 낭만주의의 대표적 화가 카스파르 프리드리히의 그림에서 이 같은 멜랑콜리 파랑은 특히 두드러진다.
색채의 상대론
미국의 파랑은 독일의 ‘멜랑콜리 파랑’과는 사뭇 다르다. 소박하고 튼튼한 청교도적 색깔이다. 미국의 초기,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온 이주민에게 의복은 가능한 한 소박하고 실용적이어야 했다. 튼튼한 천에 인디고 블루로 염색하면 값도 쌌고, 오래 입을 수 있었다. 대공황에서 벗어나 미국 자본주의가 안정되기 시작하던 1930년대 말에 ‘청바지’는 여가활동을 상징하게 되고, 60년대에 이르면 반항하는 젊은이들의 색이 된다. 이렇게 파랑이 갖는 의미와 무게는 국경과 시대를 초월하며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 되었다.
괴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 내면의 세계와 심리를 색채를 통해 감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괴테에 따르면 주관적 세계와 항상 연계되어 있는 색채는 주관적인 ‘생리색’으로부터 중간단계의 ‘물리색’, 그리고 가장 객관화된 ‘화학색’의 3단계로 존재한다. 화학색은 노랑·파랑·빨강·주황·녹색·보라의 6가지 색으로 구성된다. 이 6가지 색은 인간 내면과 각각의 방식으로 관련된다. 이처럼 괴테는 색깔을 지극히 심리적인 언어로 구분해 표현했다. 그러나 이 색채론은 괴테 생전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그때 당시 빛에 대한 학문의 주류를 뉴턴이 끌고 갔기 때문이다. 뉴턴은 물체의 운동을 분석할 때 관찰자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공간, 관성계를 가정했다. 같은 맥락으로 뉴턴은 빛과 색채를 명백한 객관적 실체로 보았다. 뉴턴에게 있어 색채는 인간의 감각과 무관하게 그저 존재하는 배경으로써의 역할을 할 뿐이었다. 그러나 괴테의 색채론의 주요 골자는 인간 내면의 세계와 자연은 감각을 매개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으로써 ‘관찰자’와 ‘현상’의 관계를 전제로 한다.
이후 괴테의 색채론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물리학에서 ‘객관성의 신화’가 무너지기 시작했을 때이다. ‘불확정성 원리’를 주장한 하이젠베르크는 41년 ‘현대 물리학의 관점에서 본 괴테와 뉴턴의 색채론’이란 논문에서 ‘주관과 객관의 이분법’을 비판하며, 관찰이 관찰 주체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현대 물리학의 연구 성과를 괴테 색채론과 연관 지어 설명한다.
BLUE LED
어둠의 장막이 벗겨지게 되면서 거기에 가리워져 있던 시간을 인류에게 선물로 주었던 건 '전구'다. 전구가 지금의 LED로 대체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물리학이 양자역학을 비롯한 현대물리 체계로 확장되면서 고체 물질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가 가능해졌고, 그로 인해 반도체의 특성을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백색광은 적색 LED, 녹색 LED, 청색 LED가 내는 빛을 합성하여 만드는데, 그 개발의 여정은 생각보다 순탄치 않았다.
LED는 적, 녹, 청의 순서로 만들어졌다. 빛은 붉은색보다 푸른색에 가까울수록 에너지가 커지다 보니 적색 LED보단 청색 LED가 만들기 어려웠다. 적색 LED가 나오고 청색 LED가 나오는 데 무려 27년이나 걸렸다. 각고의 노력 끝에 나카무라 슈지를 포함한 일본 과학자들이 청색 LED를 만들었고, 이에 대한 공로로 201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도대체 청색 LED가 뭐길래 개발자들에게 노벨상까지 수여했을까? 이 자그마한 부품 하나가 인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첫 번째, 청색 LED 개발 성공 이후 좋은 품질의 백색광 LED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인류는 형광등에 비해 수명도 길고 에너지 효율도 좋은 데다, 훨씬 밝은 빛이 나오는 광원을 얻게 된 셈이다. 두 번째, 저전력으로도 LED 작동에 무리가 없어서 개발도상국의 불안정한 전력 공급에도 LED 사용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세 번째, 청색 LED를 통해 자외선 살균이 가능해져서 빈곤 국가들이 겪는 오염된 물로 인한 질병에서도 많은 인류를 구할 수 있었다. 이로써 혹독한 겨울을 보내던 인류에게 BLUE는 봄이 되었다.
BLUE가 갖는 의미와 무게는 국경과 시대 그리고 학문을 초월하며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참고 자료 및 문헌」
김병민 - 숨은 과학
김정운 칼럼 - 괴테, 뉴턴 광학 이론 넘어서려 20년 걸쳐 ‘색채론’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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