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시간에 졸고 있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가끔은 대놓고 엎드려서 자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컨디션 좋은 날은 상냥하게 이름을 부르면서 깨운다든지, 직접 자리로 가서 힘이 실린 안마를 통해 깨운다든지, 수업시간 컨셉에 맞춰 유머러스하게 깨운다.
1,2교시 수업 - 그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수업들으려고 하니까 적응하느라 힘들지? 힘내렴~~
3,4교시 수업 - 배가 많이 고프지?? 맛있는 점심 먹을 때까지 힘내렴~~~
5교시 수업 - 밥 막 먹고 수업 듣느라 힘들지? 그럴 수 있어 힘내렴~~~
6,7교시 수업 - 이제 수업 듣고 집에 가서 게임해야지? 힘내렴~~
하지만 내 컨디션이 그다지 훌륭하지 않은 상태일 때나 그렇게 좋게 깨웠는데도 또 엎드려서 자고 있는 모습이 내 시야에 포착되는 순간 날 무시한다는 생각이 나를 휘감고 내 안의 분노 자아가 활성화되면서
나는 한 마리의 호랑이가 된다.
슬프게도 요즘에 내 안의 분노 자아를 활성화시키는 또 다른 방법이 생겼다.
반 애들이 건강상태 자가진단을 제시간에 안 하는 것이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애들과 전혀 부딪힐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애들이 알아서 잘하도록 독려하고 신경을 크게 쓰지 않았다. 그러나 너무 신경을 안 썼나 보다.
자가진단 응답률이 낮다는 교감선생님의 개인적인 연락을 자주 받다 보니 분노가 나를 휘감는다. 내가 무능력해지는 느낌도 들고, 좋게 좋게 하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안 하는 애들은 날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어 또 나는 한 마리의 호랑이가 되어서 교실로 저벅저벅 들어가 샤우팅을 한다.
그런데 며칠 전 '편견'에 대한 칼럼을 읽고 평상시에 내가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크게 실수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날 무시하는 거 같고, 날 무능력하게 바라보는 거 같은 '철저히 주관적인 판단이 만들고 있는 느낌' 때문에 화를 내고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수업 시간에 자는 애들, 시키는 거 안 하는 애들은 모두 게으르고 자기밖에 모르는 애들이라는 주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 자신도 게으르고 이기적인 게 아닌지 반성하게 됐다.
물론 애들이 잘못된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렇게 행동하는 각자의 사연이 있을 수도 있는데 단지 내 편견에 갇혀 알려하지 않고 윽박지르는 결론으로 감정을 배설하는 나 자신이 알려하지 않고 편하고 쉽게 해결하려는 게으름, 나 밖에 모르는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져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
편견 (偏見)
[명사]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
나를 화나게 했던 '날 무시하는 느낌', '날 무능력하게 보는 것' 사실 모두 근거가 없다. 오로지 내 주관적인 감정에 치우친 판단이다. 철저히 주관적이고 비논리적인 판단, 즉 완전하지 않아 한쪽으로 치우쳐진 생각 즉 편견을 가지고 행동한 것이다.
이러한 편견은 내가 우월하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어 결국 우월한 내가 정한 기준으로 상대방을 멋대로 평가하는 일종의 폭력 행위를 하는 것이고, 그 폭력은 결국 나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편견의 시작은 우월함이고 편견의 결말은 폭력이다.
역시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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