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과학이 지금처럼 숭고한 지위를 갖는 학문은 아니었다. 과학이라는 학문이 가지는 자체의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19세기로 비교적 최근이었다. 생각보다 과학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 역사는 짧다. 한 인간이 부모에게서 태어나면 부모에게 종속되듯이 과학도 철학과 종교에 종속되었다. 왜냐하면 과학은 철학과 종교안에서 태어난 학문이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세상을 보다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자연을 탐구하였고, 그러한 목적을 위한 도구로써 과학을 한 것이었다. 사유를 기반으로 한 통찰과 직관은 아르키메데스를 비롯한 여러 철학자로 하여금 '유레카!'를 외치도록 만들며 세상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수많은 힌트들을 탄생시켰다. 그러한 힌트들을 받아먹으며 성장하는 과학이었지만 어디까지나 과학은 철학에 귀속되었다.
이러한 과학이 한번 더 성장할 기회가 베이컨의 귀납론이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시대에 향유되었던 과학은 소수의 철학자가 하는 사색적인 성격의 활동이 주를 이루었다. 대표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이다.베이컨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에서 기둥을 담당하는 대전제의 불확정성이 주는 논리적 오류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개별적 사례에서 참된 지식을 얻어야 하며 다수의 개별적 사례를 위해서는 실험과 다수의 협력이 필요함을 피력하게 된다. 이로써 사유의 과학은 경험의 과학으로 전환되었고, 고대 그리스 시대보다 자연에 대해 더 정확한 설명이 가능해졌고 이해하기가 쉬워졌다.
물체의 운동과 빛의 성질을 기하학적으로 설명한 프린키피아를 저술한 뉴턴과 운동량 보존 법칙을 고안한 데카르트 모두 사물의 운동과 현상의 분석을 도구와 실험을 이용한 구체적 경험을 기반으로 한 법칙으로 정확하게 설명을 하여 명성을 떨쳤다. 다만 이들이 살았던 시대를 관통하는 흐름에는 종교가 자리잡고 있었기에 과학 활동이 종교와 분리되지를 못했었다.
우주 공간은 신의 감각 기관이라는 뉴턴과 운동량이라는 것은 신이 부여한 것이라는 데카르트
이들은 자연의 작동 기저에 깔려있는 신의 숨은 의도를 깨우치기 위해 과학을 했었던 것이다.
이처럼 근대 이전의 과학자들은 신이 창조한 자연의 법칙을 해석하고자 하는 동기에서 과학을 이용하였고 거기에 종교적 당위성을 부여했다. 어디까지나 종교가 만든 바운더리안에서만 과학이 작동해왔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뉴턴은 그때 당시 사람들에게 두루두루 인정받았지만 종교의 근간을 뒤흔들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이와 코페르니쿠스는 배척받지 않았을까?
아이는 언제까지나 부모에게 종속받는 존재가 아니다.
어느 정도 사회적 구실을 갖추게 될 때가 되면 아이는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게 된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근대로 접어들면서 과학, 그 자체로서 실용성을 갖춘 학문이라는 인식으로 과학은 철학과 종교로부터 독립하여 세속화가 되었다.
19세기 그러한 인식의 전환을 시작으로 과학은 급진적으로 발전할 수가 있었고 그렇게 발달된 과학은 인류의 문명에 많은 변화를 야기하였다.
↓과학이 인류 문명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는 프레젠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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