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물체들로 이루어진 계의 특성을 이해하고자 할 때 통계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맥스웰의 기체 분자 운동론이나 엔트로피 등 열역학적 현상들은 통계적인 방식으로 설명했었다. 이러한 통계론적 열역학은 정규분포곡선을 기본 전제로 둔다.
한편 계를 구성하는 많은 요소들이 서로 상호 작용하여 복잡한 집합적인 특성들을 보이는 복잡계를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연구들이 최근 여러 분야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림은 전 세계 공항의 국제선을 네트워크로 나타낸 것인데, 이처럼 네트워크 이론을 이용하여 복잡계의 특성을 설명하고자 하는 복잡계 네트워크는 물리 현상뿐만 아니라 생물, 기술, 경제 분야 등의 다양한 현상들을 설명한다.
자기 조직화된 임계성
'브라질 땅콩 효과'는 크기가 각각인 여러 종류의 땅콩이 들어있는 캔을 뜯어보면 항상 크기가 큰 브라질 땅콩이 위로 올라와 있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는 입자로 이루어진 시스템에서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 현상은 무질서에서 질서가 생겨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마치 열역학 제2법칙을 어기는 듯 보인다.
이러한 입자계의 연구를 통해 알아낸 재미있는 점은 입자계가 '자기 조직화된 임계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자기 조직화된 임계성'은 퍼 백이 모래더미를 연구하면서 알려졌다.
모래 입자를 천천히 떨어뜨리면 모래 입자는 일정한 경사를 가질 때까지 계속 쌓이다가 경사가 급해지게 되는데, 어느 임계 상태에 도달하게 되면 무너져서 항상 일정한 경사를 가지게 된다.
이때 '브라질 땅콩 효과'와 같이 모래 입자에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는 현상을 '자기 조직화'라고 한다.
모래 더미가 어떤 경사 이상이 되면 모래 한 알에 의해서도 무너져 내리는 상태를 '임계 상태'라 하며 '임계 상태'란 질서와 무질서가 혼재된 불안정한 상태를 의미한다.
입자계와 같은 복잡계에서는 외부의 통제 없이도 스스로 이러한 '자기 조직화된 임계성'이 나타난다.
이러한 '자기 조직화된 임계성'은 지진이나 산불, 주가 대폭락과 같은 재앙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을 갖게 한다.
지진학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지진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은 없다.
한 알의 모래가 작은 사태를 일으킬 지, 큰 사태를 일으킬 지는 아무도 모르며 모래 자신도 모른다.
지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층에 가해진 외력(횡압력이나 장력)에 의해 큰 지진이 일어날 지, 작은 지진이 일어날 지는 알 수 없다.
스키장에서는 눈사태를 막기 위해 일부러 작은 눈사태를 일으킨다고 한다.
눈이 쌓여 임계 상태에 도달하면 작은 충격이 거대한 눈사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작은 눈사태를 일으킨다.
1988년 미국 중서부에 있는 옐로스톤 국립공원에는 넉 달 동안 꺼지지 않은 채, 150만 에이커(서울 면적의 10배)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면적을 재로 만들어버린 초대형 산불이 발생했었다.
자연 보호라는 미명 아래 미국의 산림 보호 당국은 단 1건의 산불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목표로 숲을 관리해 왔다. 그 결과 숲에는 불쏘시개가 될 만한 죽은 나무와 마른 나뭇잎들이 쌓일 틈이 없었다. 숲을 솎아 내는 효과가 있던 작은 산불이 없다 보니, 자라는 나무들이 점점 조밀해졌다. 즉 네트워크의 상호 작용 크기가 커져 버린 것이다. 작은 모래 한 알때문에 거대한 모래 더미가 무너져버렸듯이 작은 불 하나로 인해 숲의 대부분이 재가 돼버렸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일부러 불을 내 수목이 조밀해져 임계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막는다고 한다.
정규분포?! 멱함수!!
공교롭게도 '자기 조직화된 임계성'은 정규 분포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현상이었다.
보통 우리는 모든 일의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정규 분포 곡선을 따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의 키나 몸무게는 정규분포를 따르기 때문에 평균을 구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전형적인 키와 몸무게를 구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아주 벗어나는 1000kg의 몸무게나 10m의 키를 가진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복잡계 네트워크가 정규 분포를 따른다면, 산불이 나지 않을 확률이 0에 육박한 곳에선 영원히 불이 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생태계를 포함한 자연에선 이러한 정규 분포를 전제로 한 예측이 빗나가는 결과가 생각보다 많이 나온다.
따라서 복잡계에서의 현상은 정규 분포가 아니라 멱(압도한다는 의미)함수 분포로 설명한다.
멱함수 분포에서는 1000kg의 몸무게와 10m 키를 가진 사람이 드물지만, 등장할 수는 있다. 지진의 발생 빈도나 산불의 발생 가능성은 정규 분포가 아닌 멱함수 분포로 설명이 된다.
그렇다면 복잡계는 왜 멱함수 분포를 보이는 걸까?
간단히 말하면 네트워크의 연결 구조가 매우 불균일하게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네트워크 이론에 의하면, 네트워크들은 각 노드들이 비슷한 연결 정도를 갖는 균일한 구조를 지닐 것으로 예상되었다. 위 그림의 왼쪽 고속도로망을 보면 느낌이 올 것이다.
이런 전제로 여러 네트워크 모델들을 연구한 결과, 균일한 네트워크 구조는 실존하는 여러 가지 네트워크의 구조를 설명하는데 부적합하기 때문에 연결 구조가 불균일한 멱함수 법칙을 따르는 스케일-프리 구조가 실존하는 여러 네트워크를 설명하기에 적합함을 알게 되었다.
오른쪽의 항공선은 각 노드들이 매우 불규칙하게 연결되어 있다. 고속도로는 정해진 규격과 놓아질 수 있는 위치, 즉 스케일(=척도)이 정의되지만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노선은 스케일이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이렇게 멱함수 분포를 전제한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은 최근 과학 분야에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복잡계에 대해 과학적인 접근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자연 현상뿐만 아니라 생명 과학, 공학, 사회, 경제 분야 등에서 나타나는 복잡한 현상들을 학제 간 연구를 통해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복잡계 네트워크가 적용된 분야
최근 들어 멱함수 분포의 분석을 기반으로 하는 복잡계 네트워크 연구가 진행되고 있음에 따라 정규 분포로는 얻을 수 없었던 새로운 직관과 통찰을 얻고 있다.
애초에 세상은 공평하게 디자인되어있지 않았다?!
사회적 네트워크는 개인을 둘러싼 다양한 환경적 변수(사회, 문화, 정치, 경제)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복잡계 네트워크임을 짐작할 수 있다. 최근 들어 멱함수 분포를 따르는 사회적 네트워크를 전제로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나 경제적 문제를 분석하기 시작하였다.
소득 분포는 정규 분포가 아닌 멱함수 분포를 따른다.
그림 속 사람들의 키는 각자의 소득이다. 우리나라 평균 소득자의 키를 175cm로 잡았다. 1년에 2000원 가량을 버는 키가 0.01cm인 사람부터 시작한다. 그 뒤를 따라 1cm, 10cm, 100cm 한참 지나야 평균 키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평균을 지나 4m~6m에 달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소득 상위 10%로 의사, 변호사, 금융인 등이다. 뒤이어 키가 20m에 육박하는 거인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대기업 고위 간부나 유명 연예인에 해당한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거인의 키는 산만하다. 무려 1227m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저 그렇게 살고 있고, 세상을 리드하는 사람은 정규분포에서 벗어난 특별한 소수들이다. 그리고 그 다수는 그 소수를 지지하며 존재 가치를 지니게 된다. 이러한 맥락과 일맥상통하는 경제학적 법칙이 있다.
상위 20%의 연예인이 전체 수입의 80%를 가져가고
인터넷 사이트 중에서 상위 12%가 전체 트래픽의 85%를 차지한다.
전 세계에 무수히 많은 공항들이 있지만 그 중에 단 8%가 허브 공항의 역할을 하면서 80% 이상의 수송을 담당한다.
영어 어휘중에서 80%는 1년에 단 한번 사용 되거나 전혀 사용 되지 않는다.
SNS나 유튜브에서의 사회적 현상도 멱함수 분포로 설명이 된다.
영향력있는 소수 크리에이터와 그들의 정보를 수용하고 확산시켜주는 다수가 존재하는데 여기서 다수가 공감해주고 좋아해줌으로써 소수는 힘을 얻고 존재 가치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더 큰 가치 비중을 지닌 소수가 다수를 압도한다는 것에만 그치지 말고
다수의 지지를 통한 부각, 확산, 창출없이는 소수의 가치가 지속되기 힘들다는 것
따라서 두 존재 모두 서로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짚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 이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스스로 답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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