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와 토끼는 자기 세계의 경제를 발전시키지 못한다. 여우는 토끼를 계획적으로 양껏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그럴 생각도 없다. 그저 자연의 순리대로 그때그때 토끼들이 번식을 활발히 한다면 여우는 풍족한 식량을 향유할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굶어 죽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토끼도 초원에서 자라나는 풀을 어떻게 해야 더 많이 자라게 하는지에 대한 지식과 기술은 모를뿐더러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여우와 토끼에게 있어서 경제란 고정된 파이를 적당히 배분하여 자급자족하는 활동일 것이다. 뭐 그런 생각조차도 하지 않을 것이다.
전근대의 인간들에게 있어서도 여우와 토끼의 상황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들에겐 모든 것이 제한되어 있었다. 한 해 농사가 잘 돼도, 농사가 잘 안돼도 모든 것은 신의 뜻이라고 여겼었다. 그들은 세상의 모든 지식과 자연의 섭리 모든 것이 성경에 집약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성경이라는 책 한권에 모든 것이 설명되어 있다는 생각, 세상을 고정된 파이로 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들은 여우와 토끼와 같은 존재였다.
알려고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성경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지에 구속받는 사회였기 때문에 과학이 발전할 수가 없었다.
루터의 종교개혁과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과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는 뭐가 원인이고 결과인지 분간하기가 무색할 정도로 서로가 서로에게 엄청난 시너지를 일으키며 세계관의 중심을 신이 아닌 인간으로 회귀시켰고 그와 동시에 인간을 종교와 무지로부터 해방시켰다. 인간의 감각과 그에 따른 경험을 중시하고 무지로부터 해방된 인간은 앎을 추구하기 시작하였고 이런 트렌드에 맞춰 과학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보통 자원이라고 하면 원자재, 에너지를 떠올리지만 원자재와 에너지는 언젠가 고갈되는 한정된 자원이다. 하지만 한정되지 않고 쓰면 쓸수록 늘어나는 자원이 있다면 믿겠는가? 그 자원은 바로 지식이다. 기름이 콸콸 솟는 유전이 발견되어서 어떠한 투자도 없이 석유를 쓰기만 한다면 언젠가 유전은 고갈될 것이다. 하지만 태양 에너지를 실용화하는 방안에 연구하는 데 투자한다면 우리는 적어도 후손까지 에너지 걱정없이 살 수 있을 것이다. 태양에너지를 우리가 쓰고자 하는 에너지로 바꾸기 위한 원리는 지식에서 태어나는 것 아니겠는가?
이처럼 근대시대에는 과학이 인류의 무기가 되었다. 앎을 추구하는 인간은 과학을 무기로 세계를 장악할 토대를 마련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은 더 이상 고정된 파이가 아니었다. 쓰면 쓸수록 늘어나는 자원 '지식' 덕분에 세상은 계속 커지는 파이가 될 수 있었고 이처럼 계속 커지는 파이를 향유하기 위해 인간들은 다양한 분야의 도전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경제는 고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파이가 계속 커졌기 때문이다. 경제의 변화 뿐만이 아니라 인류 삶의 다양한 분야에서의 변화가 촉진되었다.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개량으로 대두된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은 불난 곳에 기름을 부은 것처럼 엄청난 속도로 인류의 삶을 변화시켰다.
물과 바람을 동력원으로 공장이 돌아갔던 과거에는 공장 입지에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증기기관은 그러한 공장의 입지의 한계를 깨부쉈고 물과 바람이 아닌 수많은 노동력을 갖춘 어느 곳이든 건설될 수가 있었다.
도시에 공장이 들어서고 노동자들이 많이 필요해지면서 농촌 인구가 도시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다보니 공장 노동자들의 임금은 점점 떨어졌다.
게다가 기업가들은 임금을 줄이기 위해 여성이나 어린이까지 터무니없는 봉급을 주며 고용하기 시작했다.
갈수록 열악해지는 임금 노동자들의 상황은 사회문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기업가나 자본가와는 다른 부류에 속한 사람이라는 계급의식을 발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증기기관은 산업혁명을 넘어 영국을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유럽은 16세기부터 아프리카나 아시아 지역으로 진출해서 식민지 개척을 노렸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아시아나 아프리카 내륙 지역으로의 침투가 거의 불가능했다. 바람이 있어야만 움직이는 범선을 타고서는 아시아나 아프리카 내륙지역으로 진출하기가 너무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증기선은 내륙 침투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서양 세력은 증기선을 이용해서 강을 거슬러 올라 아프리카의 사막, 아시아의 정글 안으로 침투할 수 있었고 내륙에 위치한 주요 도시들을 직접 공격할 수 있었다.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의 본격화에는 증기기관의 산물이 증기선이 있었다.
인쇄술과 종교개혁, 증기기관과 산업혁명 과학 기술이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러한 사회적 이슈들이 모두 알게 모르게 얽히고 설켜 있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매우 겸손하게 만든다.
특히 과학과 기술의 산물인 증기기관은 산업혁명이라는 경제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도시화, 노동자 계급의 형성, 제국주의 시대의 도래 등 다양한 영역에 영향을 미쳤다.
이는 사회 변화 과정에서 과학기술의 역할이 점점 더 증대할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신호탄이었다.
사소하다면 되게 사소해보였을 과학 기술.. 단순한 열기관에 지나지 않았던 증기기관의 등장으로 도시화와 계급사회 유발 그리고 공산주의의 등장 과 같은 인류의 사상을 흔들게 되는 나비효과 같은 결과는 우리의 과학 기술이 얼마나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패러다임의 변화 기로에 서있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는 지금, 인간을 인간일 수 있게 만드는 감정과 이성을 단순한 생체 알고리즘을 보는 입장과 거기에서 시작된 인공지능 연구는 차후 우리 인류 미래에 어떠한 변곡점을 만들게 될지, 그리고 그 변곡점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성은 어떻게 잡아야 할지 깊이 고민해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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