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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토리텔링

[고급물리학],[교류전기],[상호유도],[ 변압기] 에디슨 vs 테슬라

by 사이언스토리텔러 2020.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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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슨과 테슬라

에디슨의 숙적, 지금은 일론 머스크의 전기자동차 회사 이름으로 잘 알려진 '테슬라'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보고, 우리가 알고 있었던 에디슨의 역사적 평가가 얼마나 부풀려졌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유럽의 크로아티아

1856년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난 니콜라 테슬라는 어릴적부터 우주인과의 교신을 상상했을만큼 유별난 아이였습니다.  자신과 같이 성직자의 길을 걷기를 원했던 아버지의 바람과는 달리, 테슬라는 어머니의 재능을 물려받아 어린 시절부터 발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기억력이 뛰어났던 그는 초등학교 시절 유럽 고전 시(詩)를 대부분 암기했고, 중학교 시절에는 선생님으로부터 “과학의 기초는 수학”이라는 말을 듣고는 대수표의 수치를 전부 외워버렸다고 합니다. 게다가 청년기에는 영어와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를 모두 마스터한 ‘레알 엄친아’였습니다.

 

부다페스트에서 교류의 아이디어를 얻다.

1881년 부다페스트로 옮겨 국영 전화국의 기술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이듬해 친구와 함께 공원을 산책하던 중 교류 모터의 작동원리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게 됩니다. 

 

프랑스에서 최초의 교류모터 제작하다.

1883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 테슬라는 에디슨 회사의 유럽지사에서 전기기사로 일하며 최초의 교류유도모터를 제작하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발명품을 알릴 기회를 잡지 못했던 그는 유럽에선 상용화가 힘들다는 판단을 내리고 대서양을 건넙니다. 

 

테슬라, 뉴욕에서 에디슨과의 첫대면

1884년. 테슬라는 미국 뉴욕의 에디슨 회사 본사에서 드디어 에디슨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되는데, 이것이 두 사람간 끈질긴 악연의 시작이었지요.

 

 

물의 힘으로 도는 물레방아, 바람의 힘으로 도는 풍차는 안정적이지 않았습니다. 필요할 때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좋겠지만, 우리의 바람을 자연은 완벽하게 충족시키진 않잖아요? 따라서 우리는 적재적소에 공급되는 안정적인 에너지원이 필요했고 이에 발전()의 필요성이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발전소에서 공급되는 전기에너지를 직류로 송전한다면?

이처럼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에너지는 전선을 통해 가정이나 공장으로 적시에 안정적으로 송전이 가능하였기 때문에 인류의 삶의 질이 한껏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러한 직류 발전소의 단점은 에너지가 송전되는 과정에서 각 수요지(전선, 공장, 가정 등등)마다 전압 강하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왜? 송전 과정에서 전선이나 이전의 수요지가 저항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220v의 전압을 만드는 발전소 옆에 공장이 있다고 해봅시다. 이 공장에서 220v의 전압이 필요한데 이러한 직류 송전 시스템에서는 송전 과정에서 전선의 저항에 의한 전압 강하가 발생하여 220v보다 낮은 전압이 공장에 제공되는 것이지요.

 

 

전선의 저항때문에 본질적으로 전력 소모가 일어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위의 수식에서 볼 수 있듯이 발전소에서 수요지까지의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전선의 저항은 길이에 비례하여 증가하기 때문에 발전소로부터 멀리 있는 공장같은 경우에는 손실되는 전력을 막을 수 없는 사단이 발생합니다. 

 

전선 저항 값 자체를 작게 하면 되는데 비저항이 작은 재료를 쓴다든지, 면적을 최대한 늘리는 방법은 사업상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낮았습니다. 그리고 저항 길이를 짧게 하는 것 자체는 더더욱 의미가 없었죠.(우리는 발전소보다 먼 거리에서 전기에너지를 공급받고 싶으니까요.)

 

손실전력을 줄일 수 있는 최후의 방안은 전류값을 최소화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전압의 승압과 강압; 즉 변압이 선행되어야 전류값이 변할 수 있는데 직류 발전에서는 쉽지가 않았거든요. 

여기서 왜 변압이 선행되어야 하는지는 뒤에서 설명하겠습니다.

 

결국 에디슨이 건설한 뉴욕의 직류 발전소는 0.8km 반경 내에서만 전기에너지를 공급하기 용이하였고 직류 발전 단가도 비쌌기 때문에 소수의 부유층만이 전기의 특혜를 누릴 수 있었지요.

 

 

그러나 테슬라는 교류 전기의 특성을 활용한다면 전압의 크기를 자유자재로 변화시킬 수 있다; 즉 변압이 가능하기 때문에 보다 먼 거리에 있는 수요자들 입장에서 전기에너지 공급이 쉬워지고, 그에 따라 전기 생산 단가를 낮게 하여 전기 에너지를 값싸게 이용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호 유도의 내용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상호 유도 핵심 설명

변압기는 저 위 그림에 코일이 끼워져 있는 심을 휘어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아래 그림의 1차 코일에 교류 전원을 연결한 이유는 왜죠?

교류는 전류의 방향이 주기적으로 바뀌는 형태입니다.

1차 코일에 전류가 흐르면 코일 내부에 자기장이 생기잖아요?

이때 전류의 방향이 주기적으로 바뀌면 자기장의 방향도 주기적으로 바뀌겠죠.

마치 2차 코일에 자석을 넣었다 뺐다하는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지요.

그래야만 2차 코일에 유도기전력이 형성되어 2차 코일에 전류가 흐를 수 있는 것입니다.

 

 

변압기

 

곧 변압기 각 코일의 전압과 코일의 감긴 횟수는 서로 비례합니다.

 

 

2차 코일의 감은 횟수를 증가시킨만큼 그에 따라 2차 코일의 전압은 커지게 되고, 2차 코일의 감은 횟수를 감소시킨다면 그에 따라 2차 코일의 전압이 작아지게 되는 것이죠. 

 

위의 전압과 코일의 감긴 횟수와 관련된 비례식을 보고 질문에 대답해봅시다.

 

예를 들어 100번 감긴 1차 코일에 100v가 걸려있다면 100번 감긴 2차 코일엔 몇 v의 유도 기전력이 생성되겠습니까? 그렇죠 100v가 만들어지겠죠?

그렇다면 2차 코일의 감긴 횟수를 1000번으로 증가시킨다면요? 그렇죠 1000v가 되겠죠?

그렇다면 2차 코일의 감긴 횟수를 10번으로 감소시킨다면요? 그렇죠 10v가 되겠죠?

 

단지 코일의 감은 횟수만을 달리 해줌에 따라 승압과 강압; 변압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코일을 무한정 감으면 전압도 무한정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뭔가 에너지 보존을 위배하는 듯한 뉘앙스를 받을겁니다.

하지만 여러분. 전압 자체가 에너지는 아니잖아요.

 

전기에너지는 어떻게 표현되었습니까? E = VIt , 전압과 전류와 시간의 곱으로 정의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당 전기에너지를 우리는 전력 P 라고 하였죠?

 

 

즉 전선을 흐르는 전류 I2 를 우리는 2차 코일의 전압을 올려줌으로써 감소시킬 수 있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전선을 통해 손실되는 전력을 최소화할 수 있는겁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코일의 감긴 횟수를 변화시킴으로써 전압이 변하였기 때문인거죠.

 

따라서 고압으로 전력을 수송하게 되면 전류값이 최소화되기 때문에 가정이나 공장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손실 전력을 최소화하여 수요자들이 편하게 전기에너지를 쓸 수 있는겁니다. 물론 고압으로 송전되었던 전력의 전압은 가정이나 공장에서 적정 수준의 전압의 크기로 변할수 있겠죠?(코일의 감은 수를 감소시키면 됩니다.)

 

이러한 교류의 유용성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던 테슬라는 에디슨에게 교류 전기를 추천했지만, 에디슨은 끝까지 직류를 고집하며 테슬라에게 직류발전기의 성능 향상을 지시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미 에디슨은 거액의 금액을 직류 발전에 투자해버렸기 때문에 이걸 없던 것으로 물릴 수가 없었던 겁니다.

 

테슬라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개인적인 연구 활동을 지속하게 됩니다.

 

이 때 그의 가치를 알아본 곳이 웨스팅하우스. 테슬라가 교류 발전의 특허 사용권리를 웨스팅하우스에 팔면서 그 유명한 ‘전류 전쟁’이 시작됩니다. 

 

youtu.be/RkkOm5nm908

 

직류의 우수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송전효율을 높일 수 있는 기술이 필요했지만, 이를 개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에디슨은 마타도어(Matador) ; 흑색선전을 구사하는 추잡스러움을 보입니다.

 

전기 사형 의자를 개발한 에디슨

교류가 직류보다 더 위험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개와 고양이를 교류로 감전시켜 죽이는 것을 대중들에게 보여주는가 하면 더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사형수를 전기 의자에 앉혀 죽이는 일도 서슴없어 하였습니다.

 

게다가 고전압 송전으로 손실을 줄이는 교류의 장점을 원천적으로 차단해버리기 위해, 송전압을 800V 이하로 제한하는 법을 만들기 위한 로비활동을 펼쳤습니다.

 

이런 에디슨의 꼼수에 테슬라가 맞대응한 방법 역시 한 수 높은 꼼수. 웨스팅하우스는 테슬라가 몇 백만 볼트의 교류 발전기 옆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사진을 공개함으로써 논란을 잠재운 것입니다.

이 사진은 전기를 모르는 일반인들로 하여금 ‘교류가 그리 위험하지는 않다’는 생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교류 발전기 옆에서 태연하게 책을 보는 테슬라

결국 25만개의 전구를 켜는 행사를 따낸 웨스팅하우스는 성공적으로 박람회를 마칠 수 있었고, 이후 세계 최초의 상업적 수력발전소인 나이아가라 발전소 사업까지 수주하며 교류전력체계가 전력 공급방식의 주도권을 잡는데 초석을 마련했습니다. 이 일로 에디슨 진영은 패배를 인정해야 했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에 최초의 교류발전소를 세운 기념으로 세운 테슬라 동상

여러분들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 인터넷등 수많은 전기문명이 테슬라의 교류 전기시스템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 모릅니다. 

 

테슬라의 아이디어는 무선통신기술, 고주파기술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전기시스템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고 전자현미경, 수력발전소, 형광등, 라디오, 무선조종보트, 자동차 속도계, 최초의 X선 사진, 레이더 등도 그의 작품입니다. 

 

무선으로 보다 쉽게 전세계에 전기를 보낼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던 테슬라

테슬라는 사업가가 아니라 과학자였습니다.

그리고 이상주의적인 면모를 갖고 있었습니다.

무선 송전을 통하여 전 인류가 무료로 전기를 사용하는것이 그의 꿈이었습니다.

 

전선 없이 발전소에서 수백개의 전구를 키는 실험에 성공 했는데 이는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개발한 것으로 지구의 땅이 도체가 되고 전류를 특정 방법으로 보내서 전선 없이 불을 켜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현대과학으로도 아직도 이해가 되지도 않고 풀리지 않는 방법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오직 니콜라이 테슬라만이 알고 있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항간에는 테슬라를 서포트하고 있던 회사가 구리 사업을 주요 타깃으로 잡고 있어서 전선의 재료로 쓰이고 있는 구리의 사업 가치가 바닥으로 떨어질 염려때문에 테슬라의 무선 송전 사업을 팽 당했다는 썰도 있습니다.

 

그의 연구와 업적은 사실 국가의 통제를 받았습니다.

 

당시에 그의 많은 연구가 일반에 공개되었다면 원자력에너지 보다 엄청난 에너지를 이용할수 있었을거라고 합니다.

 

니콜라이 테슬라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우주 에너지를 동력화 해서 움직이는 자동차를 만들기도 하였는데 속력이 시속 90마일(약 144 km)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니콜라이 테슬라 1900년대 초에 연료가 전혀 필요없는 자동차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지금 상용화되고 있지 않죠.

이 역시 석유를 기반으로 한 사업을 벌이던 거대한 금융세력과 정치가들이 기득권 유지를 위해 테슬라의 사업 아이디어를 팽시키지 않았을까란 조심스런 추측을 해봅니다.

 

이밖에도 마르코니의 발명이 알려지기 거의 십년 전에 라디오의 원리를 이미 시연하는데 성공 했었습니다

실제로 1943년에 대법원은 마르코니의 특허가 테슬라의 이전의 기술 때문에 무효라는 판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마르코니와 무선전신

 

노년에는 전자기파 등을 이용하여 지진을 일으키는 지진병기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기도 하였는데 현재 미국 국방성에서 니콜라이 테슬라에 대한 연구를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항간에 도는 썰이지만 1908년 시베리아에서 발생했던 '퉁구스카 대폭발 사건'의 원인이 테슬라의 무선 송전과 지진 병기 연구 도중 발생한 강력한 전자기장 영향으로 일어난 것 아니냐는 썰도 있습니다.

소행성이다. 혜성이다 퉁구스카 대폭발 사건의 원인은 아직까지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이렇듯 니콜라이 테슬라의 연구는 함부로 발표하기가 두려울 만큼 위험한 것이 많아서 정부는 니콜라이 테슬라의 과학적 업적을 인정하기 보다는 니콜라이 테슬라를 독점 하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1915년 11월 6일자 뉴욕타임스는 에디슨과 니콜라이 테슬라가 노벨물리학상의 공동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기사를 내보냈지만 정작 수상의 영예는 다른 사람에게 돌아갔습니다. 막판에 수상자를 바꾼 이유는 아직도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정부가 그들의 연구 성과가 알려지는게 두려워서 압력을 넣었다는 썰이 지배적입니다.

에디슨과 테슬라의 공동 노벨상 수상? 보도

 

테슬라는 700여 건의 특허를 취득하였으나 한 차례의 화재로 엄청난 연구결과와 재산 피해를 입었고, 말년에는 거의 무일푼으로 연구에만 몰두하다가 1943년 뉴욕의 한 호텔에서 쓸쓸히 죽었다고 합니다.

 

비운의 천재과학자 테슬라

테슬라의 천재성이 상용화되었더라면 핵발전소같은 것은 전혀 세워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구를 도체삼아 우주의 무한 동력에너지를 끌어 들일수 있음에도 인간의 욕심과 악이 그것을 놓쳐버린거죠. 참으로 아까운 인재가 돈만 밝히는 에디슨과 정부로부터 묻혔다는 사실이 안타깝네요.

교과서에 나오지도 않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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