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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토리텔링

때로는 불편함을 즐겨라. [넛지-목성의 위성을 발견한 갈릴레이] [과학 프레젠테이션]

by 사이언스토리텔러 2020.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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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으로 하여금 만유인력 법칙이 나올 수 있도록 인사이트를 제공했던 갈릴레이의 '목성 주위를 공전하는 4개의 위성' 발견

 

머나먼 하늘에 떠 있는 별이나 행성을 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그렇습니다. 망원경이 필요합니다.

하늘을 관찰하는 갈릴레이

하늘에 관심이 많았던 갈릴레이는 관찰한 여러 결과를 종합하여 태양이 지구 주위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움직인다는 지동설을 주장합니다. 천동설이 팽배했던 로마 가톨릭 시대였기 때문에 지동설을 접으라고 강요받기도 했었고, 심지어 끔찍한 고문과 죽음의 위협까지 받았지만 갈릴레이는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는 하늘에 관한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을까요? 네덜란드가 그를 받아주었기 때문이죠.

 

사상의 자유를 존중하는 네덜란드는 지동설에 반감이 없었기에 당시 이탈리아에 있었던 갈릴레이에게 교수직을 제의했고, 갈릴레이는 그 덕에 천체 망원경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 덕에 태양의 흑점, 금성의 위상 변화, 달의 운석공, 그리고 목성 주위의 네 위성 등을 관측할 수 있었죠.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영토

엄청난 정복 활동을 통해 광활한 영토를 얻은 마케도니아 제국의 알렉산더 대왕은 신문물에 관대했습니다. 적국의 포로들에게 매우 관대했고, 그들의 종교와 문화양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습니다. 그 결과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이라는 엄청난 문화적 산실이 탄생할 수 있었고 이는 마케도니아 제국의 번영을 이룩했습니다. 후시대의 칭기즈칸도 알렉산더 대왕처럼 적국에 포용적인 입장이었기 때문에 대몽골제국을 수립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역사상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었던 17세기 네덜란드의 외교 노선은 철저한 평화 정책이었고 그들은 새로운 것과 낯선 것에 비교적 관대했습니다.

17세기 네덜란드 패권

1930년대에 나치에게 쫓겨난 유럽 지식인들이 대거 망명해 오는 바람에 톡톡히 덕을 보았던 미국처럼, 온갖 검열로 사상의 자유를 억압받던 당시의 유럽 지성인들에게 네덜란드는 지성인의 이상향이었습니다. 그래서 17세기의 네덜란드는 아인슈타인이 존경해 마지않았던 위대한 유대인 철학자 스피노자의 안식처일 수 있었습니다.

 

수학사에서 한 획을 그은 데카르트에 정치학자 존 로크, 예술가 렘브란트, 빛의 굴절 법칙을 발견한 과학자 스넬 모두 네덜란드라는 땅 위에서 학문의 꽃을 피웁니다. 

스피노자, 데카르트, 렘브란트, 스넬의 법칙

 

낯선 것에 관대하여 모든 것을 포용했던 알렉산더 대왕과 칭기스칸 그리고 네덜란드와 미국은 어떤 인사이트를 가지고 있었기에 낯선 것이라면 배척하는 사상이 주를 이루는 역사의 무대에서 그들에 반하며 행동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알고 있었을까요? 낯선 것을 포용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계속 고민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옛 것과 새로운 것

새 물건을 적극적으로 쓰는, 소위 얼리어답터라 자칭하며 나는 새 물건을 적극적으로 쓰는 사람이니 신문물에 포용적이라는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새 것이 주는 신선함과 낯선 것이 주는 불편함은 엄연히 다릅니다. 

 

어떤 물건이 고장나거나 못 쓸 정도로 낡게 되면 사람들은 보통 원래 쓰던 물건이 가지고 있는 기능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물건을 사기 마련입니다. 디자인이 바뀌어서 새 물건을 샀다는 느낌을 받을 뿐이지 새 TV, 새 차, 새 냉장고 등등 모두 원래 물건이 가지고 있던 기능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단지 디자인이 바뀌었거나 살짝 새로운 기능이 첨가된 것뿐이지요.

우리는 단지 TV를 보기위해 새 TV를 사고, 빨래를 하기 위해 새 세탁기를 사고, 운전을 하기 위해 새 차를 삽니다. 

 

새 것과 낯선 것은 엄연히 다릅니다. 한 번도 접해보지 않고, 생각해보지 않고, 시도해보지 않았던 낯선 무언가는 우리로 하여금 신선한 생각을 들게 하는 것보다는 불편한 감정을 유발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낯선 것에 대해 일단 경계하고 보는 거죠.

 

 

 

익스플로러와 크롬

한때 웹사이트 시장을 제패했었지만 Active 압박과 호환성 문제로 프로그램 자체가 무거워져 지고 있는 별인 '익스플로러'와 이에 반격해 엄청난 점유율 상승을 그리고 있는 '크롬'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것을 쓰고 있나요?

 

당연히 액티브 압박도 없고, 가벼워서 속도가 빠른 크롬을 많이 쓰겠거니 했지만, 생각보다 익스플로러를 쓰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절 놀라게 했습니다. 익스플로러를 쓰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어차피 그게 그거인데 굳이 크롬을 새로 깔고, 새로 익혀야 할 불편함을 감수할 바에 예전부터 써와서 익숙한걸 택하겠다는 의견이 대세였습니다.

 

삶을 유지하고 거기에서 오는 안정감을 가치 있게 여긴다고 하지만, 흘러온 역사를 살펴봤을 때 우리가 유지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은 모두 익숙한 것을 타파하고 낯선 것을 수용하여 불편함을 감수한 결과들이 이룬 것들입니다.

천동설을 포기하고 지동설을 채택한 결과 인류는 세상의 중심이 인간이라는 오만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드넓은 우주, 그 속의 너무나 작은 지구라는 행성에서 하물며 인간은 말할 것도 없을 정도로 초라합니다. 대자연 앞에서 겸손할 수 있게 된거죠.

 

그와 더불어 현대 과학은 인간의 존엄성을 위시해 '평등'이라는 관념을 탄생시켰고, 여러 역사의 변곡점에서 불편함을 감수했던 선조들의 노력 덕분에 오늘날의 우리 삶 속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습니다.

인천 송도구에서 볼 수 있는 조형물 '순환의 역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불편함은 산재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그런 점이 바뀌기 위해서는 우리도 역시 불편한 것을 수용하여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역사는 돌고 도니까요.

가끔은 우리의 삶이 고루하고, 발전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내가 불편한 것을 외면하고 익숙한 것에만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왜 사람들은 익숙한 것을 더 좋아할까요? 사람은 본능적으로 편안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발전하고 싶고, 돈을 많이 벌고 싶고, 명망을 떨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편안하고 싶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욕심일 뿐입니다.

 

변화는 발전에 우선합니다. 결국 나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는 익숙한 것보다는 낯선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이라는 상황에 변화의 타개점을 주어야 내가 바라는 이상향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그 변화의 타개점엔 불편함이 도사리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익숙함과 편안함에만 도취하지 말고 때로는 불편함을 즐기며 변화와 발전을 지향하는 사람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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