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09 - [2024 고급물리학] - [고급물리학] 특수상대성이론 ② {질량과 에너지의 관계}
학습 목표
일반상대성이론의 원리를 바탕으로 중력 렌즈와 블랙홀, 중력에 의한 시간 변화 등을 정성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물리학 전개도
판서 조직도
1. 가속 좌표계와 관성력
관성계에서만 적용되던 뉴턴 운동 법칙이 비관성계에서도 작동하기 위한 도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뉴턴은 '관성력'이란 가짜 힘을 고안하였습니다. 이로써 관성계에 머물렀던 F=ma 세계관이 비관성계로 넓어지게 됐어요.
1) 관성계
트럭 위의 사람이 공을 위로 던졌습니다. 공이 손을 떠나는 순간, 트럭 안의 사람과 트럭 밖에서 정지해 있는 사람이 보는 공의 운동 궤적은 서로 달라요. 그러나 공이 바닥에 떨어지게 되는 결과, 즉 바닥에 닿는 공의 속력과 바닥에 닿는 데 걸린 시간은 두 사람에게 똑같이 관찰됩니다. 왜냐면 이 물체에게 중력이 작용한다는 사실과 물체에 작용하는 힘에 의해 속도가 변화하는 경향, F=ma는 두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이에요. 이처럼 동일한 물리 법칙이 적용되는 두 사람은 각각 정지해 있고, 등속 운동을 하고 있으니 이러한 계를 기준계로 설정하고, 이를 '관성계'라 합니다.
2) 비관성계
반면에 가속도 운동을 하는 좌표계는 가속 좌표계 안의 관찰자, 관성계 안의 관찰자에 따라 뉴턴 운동 법칙의 일관성이 어그러집니다.
a로 가속 운동하는 버스에 추가 매달려있습니다. 이를 관찰하는 두 사람이 있어요. 한 사람은 버스 밖, 즉 정지한 좌표계인 관성계에서 관찰하고 있고, 한 사람은 버스 안, 즉 가속 좌표계인 비관성계에서 관찰하고 있습니다. 추에 작용하는 힘과 운동에 대한 이들의 입장을 살펴봅시다.
① 관성계의 관찰자 입장
이 사람은 추 역시 버스와 같이 등가속도 운동을 하는 것으로 봅니다. 버스가 a로 등가속도 운동하므로 버스에 매달려있는 추도 a로 등가속도 운동해요. 그 말은 추의 질량이 m이라면, 추에 작용하는 알짜힘이 ma라는 뜻입니다. 이 알짜힘 ma는 추에 작용하는 실제 힘, 장력과 중력의 합력입니다.
② 비관성계의 관찰자 입장
그러나 버스 안의 관찰자는 추가 정지해 있는 것으로 봅니다. 추가 정지해 있다는 건 추에 작용하는 힘들이 평형 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뜻해요. 추에 작용하는 실제 힘들은 장력과 중력인데, 이 두 힘의 합력을 상쇄할만한 또 다른 힘이 있어야 해요. 그러나 그런 힘이 단지 관찰자가 바뀌었다고 해서 생겨야 한다는 건 논리적 합당함과는 거리가 멀어요. 관찰자의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관찰자의 남다른 아우라가 힘을 만들어내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3) 관성력
모든 상황이 같은데 단지 관찰자가 달라져서 뉴턴 운동 법칙이 어그러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뉴턴은 비관성계에서도 뉴턴 운동 법칙을 성립시키기 위해 '관성력'이라는 가짜 힘을 고안한 거예요. 비록 가짜 힘이지만 관성력을 느낄 수는 있죠.
버스가 갑자기 출발하면(=가속도 방향이 오른쪽이면) 뒤로 밀리게 되는데, 이는 관성력이 왼쪽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버스가 급정거하면(=가속도 방향이 왼쪽이면) 앞으로 쏠리게 되는데, 이는 관성력이 오른쪽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가속 좌표계 안에서 작용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힘을 '관성력'이라고 하며, 크기는 다음과 같아요.
관성력의 크기는 물체의 질량과 좌표계의 가속도의 곱이며, (-) 부호는 관성력의 방향이 좌표계의 가속도 방향과 반대임을 의미합니다.
2. 중력은 관성력의 일종이다?!
질량은 두 가지의 다른 특성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질량에 대한 중력 끌림과 가속에 대한 저항을 나타내는 관성의 특성을 일컫습니다. 너무나도 다른 두 힘이지만 질량에 비례하는 공통된 관계를 갖는 두 힘의 정체는 뉴턴과 많은 다른 물리학자들을 오랜 시간 동안 당혹스럽게 만들었어요. 그러나 아인슈타인에 의해 중력은 관성력의 일종임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등가 원리
가속 운동에 의해 나타나는 관성력의 크기는 가속도의 크기뿐 아니라 물체의 질량에 의해 결정됩니다.
중력의 크기 또한 물체의 질량에 의해 결정되죠.
만일 우주선의 가속도가 g라면, 우주선 안에서 사람이 느끼는 관성력의 크기(=저울의 눈금)는 mg일 것입니다. 만일 우주선이 중력 가속도가 g인 지표면 위에 정지해 있다면, 사람은 저울 위에서 올라섰을 때 mg를 가리키는 눈금을 확인할 것입니다. 이때 mg는 중력의 크기죠. 만약 우주선 안의 사람의 우주선 바깥을 전혀 볼 수 없다면, 가속 운동에 의한 효과와 중력에 의한 효과를 구별하긴 힘들 겁니다. 이와 같이 '가속 운동 하는 좌표계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중력이 작용하는 좌표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서로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을 '등가 원리'라고 합니다.
둥둥 떠다니는 우주인
TV에 나오는 우주인들이 우주선 안에서 둥둥 떠다니는 것은 '지구와 너무 멀어서 중력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주 정거장이나 우주왕복선의 고도는 기껏해야 450km 이내,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밖에 안돼요. 2023년, 누리호 3차가 안착하는 데 성공한 궤도 반경 정도입니다. 사실 상공 450km은 '우주'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입니다. 그런데도 우주인의 몸이 둥둥 떠다니는 것은 우주선이 그들과 함께 지구로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죠.
3. 변형되는 공간, 장(Field)
아인슈타인의 관점에서 질량의 이중적 행태가 두 행태 간의 아주 상세하고도 기본적인 결합의 증거였습니다. 그는 어떠한 역학 실험으로도 중력과 관성력을 구별할 수 없다고 지적하였어요.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중력이 작용하는 관성계와 중력이 없는 공간에서 가속되고 있는 비관성계는 완전히 동등합니다. 상대적으로 가속되고 있는 두 좌표계는 서로 구분될 수 없으므로, 이는 서로에 대해 나란히 가속되고 있는 좌표계가 물리적으로 완전히 동등하다는 생각으로 확장된 거죠. 이는 관성계에만 한정시켰던 특수상대성이론의 인위성을 해결해 줬습니다. 지금까지는 질량을 가진 물체에 생기는 효과인 중력과 관성력에 대한 통찰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질량이 없는 빛에 대한 통찰을 이야기해 볼 차례가 왔어요.
1) 등가 원리와 빛
그림과 같이 위로 가속되는 공간을 가로질러 빛이 수평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공간 밖의 관성계에 있는 사람에 의하면 공간이 위로 가속되고 있고, 빛은 빨간 점선을 따라 직진합니다. 하지만 공간 안의 비관성계에 있는 사람에 의하면 공간이 위로 가속됨에 따라 빛은 아래로 굽어진 궤적을 따라 이동합니다.
그렇다면 중력이 작용하는 정지한 공간에 있는 관찰자가 보는 빛의 궤적은 어떨까요? 등가 원리는 그 어떤 실험도 'g로 가속되는 좌표계'와 '중력이 작용하는 관성계'의 구분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빛도 예외가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은 빛이 중력의 영향을 받아 휘어진 궤적으로 움직인다는 추론을 합니다.
엄밀히 따지면 이 추론은 '등가 원리'란 대전제를 연역해서 얻은 결론이죠. 빛이 중력의 영향을 받아 휨을 입증할만한 데이터가 필요했습니다. 이는 영국의 천문학자 에딩턴에 의해서 밝혀져요.
2) 변형되는 공간, 장(field)
수학적으로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던 아인슈타인 이론의 실험적 검증을 위해 천문학자들에겐 개기일식이 필요했습니다. 태양이 빛나는 낮에는 별을 전혀 볼 수 없고, 반대로 밤에는 태양이 없어 실험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에딩턴은 1919년 5월 일식이 생길 때 태양 뒤의 별을 볼 수 있는지 관측하였습니다. 즉, 빛이 태양 근처를 지나면서 태양의 중력을 받아 휜다면, 그림처럼 태양 뒤에 가려진 별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죠. 그 결과 아인슈타인의 예상이 옳다는 게 밝혀집니다. 독일의 아인슈타인, 영국의 에딩턴. 이 이중 국적 탐험은 이론과 실험의 완전한 팀워크의 모범 사례로 여겨진집니다. 민족의 벽을 넘어선 국제 협력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 과학계를 위한 긍정적 신호였습니다. 이는 전쟁의 혼란을 겪은 뒤 적과 아군이 환희와 매혹을 함께 나눈 최초의 순간이었죠.
중력에 의해 빛이 휜다는 결론을 두고 아인슈타인이 이를 해석한 과정을 살펴봅시다. 중력이란 응당 질량이 있는 물체에 작용하는 힘입니다. 그렇다면 질량이 없는 빛에 작용하는 중력은 0일 텐데 진행 경로가 어떻게 휠 수 있는 걸까요? 게다가 빛이 휜다는 사실은 빛의 '속도'가 일정하지 않다는 걸 뜻합니다. 이는 '광속 불변 원리'에 위배되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어요. 아인슈타인은 광속 불변 원리를 고수하면서 빛의 휨에 대한 명쾌한 해석을 내놓아야만 했습니다.
그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결론은 과감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애초에 중력이란 건 없다고 봤어요. 단지 질량의 존재가 그 질량 주위의 시공간을 왜곡하고, 이 시공간의 왜곡이 모든 자유로이 움직이는 물체가 따라야 하는 시공간상의 경로를 결정한다고 본 것이죠. 즉, 빛은 질량에 의해 휜 공간을 따라 진행하기 때문에 휘어져 보이는 것입니다.
그저 자연법칙의 배경에 지나지 않았던 공간 개념이 객체와 상호 작용하여 변형될 수 있는 새로운 공간 개념으로 발전하였어요.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새로운 공간을 '장(field)'라 정의하고, 질량과 상호 작용하는 시공간을 '중력장'이라 하였습니다. 이 골자를 토대로 세워진 일반 상대성 이론은 힘의 개념을 휘어진 시공간을 따르는 물체의 운동으로 대체하였어요.
3) 중력에 의한 시간 지연
특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공간이 왜곡됨에 따라 시간이 왜곡됩니다. 그 이유는 어떤 상황이 와도 광속의 절대성이 부정되지 않기 때문이죠. 이처럼 공간과 시간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질량을 가진 물체에 의해 공간이 왜곡되었다면 그 물체 주변의 시간도 왜곡되어야 해요.
GPS 시스템은 궤도상의 위성과 지구 사이에서 신호가 오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것에 기반을 두고 있어요. 그런데 GPS 위성은 지구에 있는 우리에 비해 지구의 중력장으로부터 더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결국 위성에서의 시간과 지구상의 시간은 동일하지 않으며, 실제 지구에서의 시간은 위성에서의 시간보다 살짝 느리게 흘러야 합니다. 실제로 지상 2만 킬로미터 상공 궤도에서 인공위성의 시간과 비교해서 지상에서의 시간은 39 마이크로초 더 느리게 흐릅니다. 70년이 지나면 지구와 인공위성의 시간의 갭은 1초 차이가 날 거예요. 이 시간 갭이 미약할지라도 이를 무시하고 거리 계산을 보정하지 않으면 GPS를 통해 얻은 결과는 지구에서 쓸 수 없게 됩니다.
중력에 의한 시간 지연 비유
동심원을 이루며 여러 겹으로 된 회전목마를 생각합시다. 상대론에 따르면 빨리 움직이는 물체일수록 시간이 느리게 갑니다. 중심에서 멀리 있는 회전목마에 탄 사람일수록 선속도가 커지므로, 시간이 더 천천히 갑니다.
회전목마를 탄 사람은 자기가 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바깥쪽으로 원심력(=관성력)이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리고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더 큰 관성력이 작용한다고 생각할 겁니다(=mrw^2). 등가원리에 따르면 관성력과 중력은 같은 겁니다. 따라서 회전목마를 탄 사람은 중심에서 먼 곳의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을 속도 때문이 아니라 중력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중력이 크면 클수록 시간은 천천히 흐릅니다.
4) 중력 렌즈
중력 렌즈 현상은 1924년 처음 언급되었으나 그 당시 과학자들은 중력 렌즈 효과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마추어 과학자의 제안에 따라 아인슈타인이 1936년 논문으로 발표하면서 중력 렌즈 현상에 대해 과학자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이후 1979년 '퀘이사'라는 천체가 관찰되면서 두 개의 별이 동일한 것임을 알게 되었고, 이것이 중력 렌즈에 의해 생긴 두 개의 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어떻게 10억 광년 떨어진 두 개의 별이 자신들에게서 나오는 빛의 박자를 맞추어 한 달 안에 동시에 더 밝아졌다가 다시 더 어두워지자고 합의할 수 있을까요? 이후에 중력 렌즈 현상이 계속 발견되었고, 현재에도 많은 중력 렌즈 현상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4. 블랙홀
1) 우주 방정식
전하들 사이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전자기장을 통해 전자기력이 작용하는 것처럼, 두 질량 사이의 중력 역시 중력장을 통해 작용합니다. 전자기장의 특질이 맥스웰 방정식에 의해 정의되듯이 아인슈타인은 맥스웰 방정식을 본떠 중력장에 대한 방정식 '우주 방정식'을 만듭니다.
아인슈타인은 '만유인력의 법칙'에 등장하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의 실체를 해석하는 데 몰두했어요. 절대공간에서는 거리의 제곱이란 말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운동에 따라 달리 정의되는 상대성의 시공간에서 거리의 제곱은 의미를 상실합니다. 그는 4차원 세계에서의 힘을 정의하기 위해 골몰합니다. 직관적으로 이 힘이 우주에 존재하는 별과 같은 무거운 존재가 시공간을 휘게 하고, 구형의 곡률이 반지름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논리에 입각해서 이 힘의 크기는 휘어진 공간의 곡률의 정도에 비례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기하학적 직관을 4차원의 정교한 수학으로 만들기 위해 아인슈타인은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10년 동안이나 공부했대요. 마침내 그는 질량을 갖는 존재가 4차원 공간에 만드는 왜곡과 그 왜곡이 만들어내는 힘을 정의하는 우주 방정식을 만들어 냅니다.
왼쪽은 4차원 시공간에서의 가속도항을 나타내고 오른쪽은 만유인력을 나타내는 중력가속도입니다. 본질적으로 이 식은 'F=ma'를 상대론적으로 수정한 것으로써 질량에 의해서 휘어지는 시공간이 어떻게 표현되는가를 입증해요.
2) 우주 방정식의 해, 블랙홀
우주 방정식을 풀면 '블랙홀'이라는 특수해가 나와요. 처음에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방정식이 틀렸다 생각했고, 블랙홀이 실제로 존재할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졌습니다. 아인슈타인 사후 1965년 펜 로즈가 이를 수학적으로 증명하여 블랙홀의 존재를 이론적으로 제시한 논문을 발표했고요. 이후 2019년, 실제 블랙홀이 발견됨으로써 그 존재가 입증되었습니다.
블랙홀은 2019년 4월 인류 역사상 처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북·남미, 유럽 등의 과학자 200여 명의 연구진이 전 세계 거대 전파망원경 8개를 연결해 블랙홀 모습을 최초로 촬영했어요. 위 사진은 지구로부터 5500만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블랙홀 ‘M87’입니다. 연구진은 M87 주변에서 왜곡된 빛의 조각들을 일일이 모아 950억㎞에 달하는 블랙홀의 그림자를 찾아낸 것입니다.
3) 사건의 지평선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중력이 큰 곳에서 상대적으로 시간이 천천히 흘러갑니다. 따라서 블랙홀 근처로 가면 중력이 점점 커지므로 블랙홀 근처의 시간은 천천히 흘러가요. 블랙홀의 중심으로 가까이 갈수록 중력은 엄청나게 커지고, 그곳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다 못해 정지해 버릴 것입니다. 이 지점을 '사건의 지평선'이라고 해요. 이 지점에서는 시간이 멈춰버릴 정도로 무한대의 중력이 작용하기에 빛의 이동이 차단되어 버립니다. 따라서 우주선이 이 선을 넘어가게 되면, 더 이상 우리는 우주선과 통신을 할 수 없게 돼요. 그러므로 사건의 지평선 너머에는 어떤 사건들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습니다.
4) 우주 방정식의 또 다른 해, 웜홀
웜홀 역시 우주 방정식의 특수해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우주 방정식에 시간이 역전할 수 있다는 조건을 걸어주면 새로운 해가 등장하는데, 이 해를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아인슈타인-로젠의 다리'라 불렀습니다. 블랙홀이 안정된 해인 데 반해 아인슈타인-로젠의 다리는 아주 불안정합니다. 이 해는 순식간에 생겼다가 곧바로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해도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여겨져 큰 관심을 끌지 못했어요. 그 후 20여 년 동안 묵은 채로 있던 이 해는 1950년대 후반 미국의 저명한 물리학자 휠러가 '웜홀'로 바꿔 부르면서 '시공간의 거품'의 형태로 다시 도입되었어요.
5) 중력파
전자기장의 왜곡이 전자기파로 나타나듯이 중력장의 왜곡 또한 파동의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습니다. 이를 '중력파'라고 했어요. 중력파는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해 예측되었지만 1세기가 지나도록 관측되지 못하다가 2015년에 발견됩니다.
2015년 9월 14일 오전 9시 50분 45초에 당신은 아주 잠깐이나마 키가 조금 커졌습니다. 태양보다 질량이 각각 30배나 큰 두 개의 블랙홀이 격렬하게 합쳐지면서 시작된 중력파 물결의 마루가 13억 년 동안 우주를 가르며 공간을 왜곡하다가 바로 그 시간에 우리를 지났거든요. 중력파를 정면으로 맞은 공간은 수직으로는 늘어나고 수평으로는 축소되며, 파동 골이 지나면 반대 현상이 일어납니다. 우리 몸이 파동이 지나는 길에 있다면, 파동이 지나면서 몸이 길어지고 홀쭉해지다가 짧아지고 넓어지는 주기가 반복됩니다.
양성자 너비의 100만 분의 1도 채 되지 않을 만큼 키가 자란 당신은 느끼지 못했겠지만,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의 물리학자들은 알아차렸습니다. 이렇게 중력파가 검출됨으로써 일반상대성이론은 강력한 증거를 갖게 되었어요.
빛과 시간, 모두 멈춰버리는 사건의 지평선
빛은 너무나 가벼워서(light), 말 그대로 빛(light)이 될 수 있었어요. 자연에서 가장 빠른 건 빛이기 때문에 한 영역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정보는 빛을 통해 다른 영역으로 전달됩니다. 그러므로 빛의 이동에 제한이 생긴다면 정보 전달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극단적으로 빛을 통한 정보가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시공간의 경계, '사건의 지평선'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흔히 지평선 하면 멀리 땅 아래로 태양이 넘어가서 태양이 보이지 않게 되고, 지평선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가게 되면 그 너머에서 어떤 사건들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어요.
사건의 지평선 - 윤하
저기, 사라진 별의 자리 아스라이 하얀빛
별은 한없이 팽창하다가 핵융합의 재료가 소진되면, 끝없이 수축한 뒤 생애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블랙홀이 됩니다. 별의 엄청났던 질량이 사람의 손바닥만한 크기에 압축되다 보니 블랙홀의 중력은 매우 강해요. 빛조차도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강합니다. 별이 사라진 자리, 그 근처를 아른거리던 빛은 아스라이 흔적을 남기고 블랙홀 내부 어딘가로 사라집니다.
아낌없이 반짝였던 시간이 옅어져 가더라도
한때 반짝였던 과거의 시간은 희미한 추억이 되어 내 안에 살아 숨쉬듯이, 찬란하게 빛났던 별의 시간도 블랙홀 어딘가에 머물러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그곳이 어딜까요? 바로 '사건의 지평선'입니다.
돌아보면 과거의 인연들에게 모두 서투르지 않았나란 후회를 하게 됩니다. 그게 연인이었을 수도, 친구였을 수도, 가족이었을 수도, 과거의 나일 수도 있어요. 서툴렀던 과거는 시간 속에 점점 옅어져서 아득한 기억의 지평선 너머 아스라이 흩어집니다. 그러나 사건의 지평선 너머에 있는 무언가와는 어떠한 상호 작용이 불가능했듯이, 기억의 지평선 너머의 과거와는 더 이상 상호 작용을 할 수가 없어요. 그렇기에 헤어진 연인이나 사랑하는 가족, 친했던 친구, 그리고 과거의 어리석었던 나. 영원할 것 같고 익숙했던 존재들을 기억의 지평선 너머로 담담하게 보내줄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서로의 끝이 새로운 길 모퉁이가 될 수 있는 법.
여긴, 서로의 끝이 아닌 새로운 길 모퉁이
후회와 미련은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보내버려요 우리.
끝이 마무리되는 지평선에서 새로운 내일이 떠오르듯이
어설프고 어리석었던 과거를 담담히 받아들이고 새로운 시작을 도모하는
좀 더 성숙한 나로의 도약을 위한 현명한 '마지막 매듭'을 지어봐요 우리.
오늘도 물리를 통해 인생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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