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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토리텔링

[복잡계 네트워크] 꼰대라서 멸종한 공룡

by 사이언스토리텔러 2020.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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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지구에 나타나기 훨씬 전에 지구를 지배하던 동물이 있었다. 바로 공룡이다. 지금부터 약 2억 3,000만 년 전 공룡이 처음 나타나서 사라질 때까지 지구는 거대한 파충류인 공룡의 세상이었다. 학자들은 2억 년 가까이 지구의 주인으로 살아가던 공룡이 갑자기 멸종하게 된 원인을 여러 가지로 말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지구와 거대한 운석의 충돌설이다. 

자연스럽게 진화하듯 자연스럽게 멸종,  그 기저에 있는 복잡성 네트워크

정말로 그 많은 공룡들의 멸종 원인을 운석이라는 하나의 변수로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다양한 변수가 산재돼있는 생태계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인과관계를 단 하나의 우발적인 변수로 설명한다는 건 너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지 않을까? 멸종도 사실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패턴의 일종이 아닐까? 생명이 환경에 맞춰 스스로 발생하여 진화하고 번성하는 패턴처럼 말이다. 이러한 생명의 패턴을 뒷받침해주는 이론이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이다.

(좌) 영화 '쥬라기 공원'의 원작 소설가 마이클 크라이튼 (우) 영화 쥬라기 공원 中

마이클 크라이튼의 주장은 이렇다. 6500만 년 전 '중생대의 생태계'라는 복잡계에서 한 무리의 공룡들이 적응 능력을 잃고 생명이 위태로워졌다. 즉, 공룡들은 운석이 지구와 충돌하지 않았어도 멸종됐을 수 있다는 거다. 어찌 됐든 공룡이 멸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적응 능력을 잃었기 때문이고, 그 이유를 단순한 인과율로는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패턴의 전체적인 경향을 설명하려는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이 탄생한 것이다.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의 핵심, 자기 조직화된 임계성

브라질 땅콩 효과는 크기가 각각인 여러 종류의 땅콩이 들어있는 캔을 뜯어보면 항상 크기가 큰 브라질 땅콩이 위로 올라와 있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브라질 땅콩 효과

브라질 땅콩 효과는 입자로 이루어진 복잡계에서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 현상은 무질서에서 질서가 생겨나는 것 같이 보이기 때문에 마치 '열역학 제2법칙'을 어기는 듯 보인다. 이러한 복잡계의 연구를 통해 알아낸 재미있는 현상은 복잡계가 '자기 조직화된 임계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자기 조직화된 임계성'은 1966년 '퍼 백'이 모래더미를 연구하면서 알려졌다.

 

'퍼 백'의 모래더미 실험

모래 입자를 천천히 떨어뜨리면 모래 입자는 일정한 경사가 될 때까지 계속 쌓이다가 어느 상태에 도달하게 되면 무너지게 되어 항상 일정한 경사를 가지게 된다. 이때 브라질 땅콩의 현상과 같이 모래 입자에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는 현상을 '자기 조직화된 임계성'이라고 한다. 모래 더미가 어떤 경사 이상이 되면 모래 한 알에 의해서도 무너져 내리는 상태를 임계 상태라 하며, 임계 상태란 질서와 무질서의 불안정한 균일 상태를 의미한다. 

건강한 시스템과 안정의 역설

눈사태와 산불

스키장에서는 눈사태를 막기 위해 일부러 작은 눈사태를 일으킨다고 한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눈이 쌓여 임계 상태에 도달하면 작은 충격이 거대한 눈사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작은 눈사태를 일으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수목원에서는 일부러 불을 내 나무가 조밀해져 임계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막는 경우도 있다. 이는 시스템에 인위적인 변화를 가함으로써 시스템의 안정을 도모하는 선견지명인 셈이다.

 

보통 '유지'라 하면 '변화'보다는 '안정'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커져가는 시스템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안정' 뿐만이 아니라 '변화' 역시 필요하다는 역설을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의 '자기 조직화된 임계성'이 설명하고 있다.


안정을 추구하다가 쇠락한 중국

총,균,쇠 

최근에 읽었던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는 "정말로 유럽인이 동양인보다 지능으로나 신체적으로 우월해서 세계 패권을 장악했을까?", "과거에 세계 헤게모니를 장악했던 중국은 왜 근대에 접어들어 몰락했을까? 와 같은 질문에 대해 '결국은 부동산'이라는 신박한 답으로 귀결시킨 책이다. 부동산에서 파생된 사회·문화적 요건과 경제적 요건으로 지금의 유럽과 미국이 세계 패권을 장악할 수밖에 없다는 책의 논리를 통해 나는 삶의 지향점을 어디에 두어야 하고,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중국이 쇠락한 이유에 대한 다이아몬드의 의견은 참 흥미로웠다. 사실 중국이 낙후되었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중국 대륙 자체의 부동산 가치는 매우 훌륭했다. 식량 생산이 일찍 시작되었고 땅덩어리가 워낙에 넓다 보니 생태학적으로 다양한 농작물과 가축을 가질 수 있는 것 외에 가장 많은 인구를 유지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그리고 여타 지역보다 덜 건조하고 생태학적으로 덜 취약한 환경이기 때문에 10,000년 가까이 농업을 계속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생산성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한 중국의 주도권이 유럽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다이아몬드는 중국의 극단적인 통합과 안정에서 찾았다. 중국은 일찍 통합이 되었고 그 후 대부분의 기간 동안 안정을 추구한 반면, 유럽 대륙은 분열되어 있었다. 분열된 유럽은 변화에 민감하여, 박해받는 개혁자에게 피난처와 그 외의 지원책을 제공하고 각 나라 사이의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기술, 과학, 자본주의의 진보를 육성했지만, 변화와 안정의 균형에서 안정만을 추구했던 중국은 결국 도태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공룡과 중국은 커져가는 그들의 시스템 속에서 안정만을 추구했지, 시스템 내외로 일어나는 자그마한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해 망하게 된 경우다. 사실 과거의 그들이 뭘 알았겠는가? 하지만 이들을 애도하기 위해 우리가 역사를 살펴보는 건 아니다.

 

우리가 이들의 역사를 살펴보는 이유는 우리 삶의 지향점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에 대한 힌트를 얻기 위함이다.


먼저 안 게 오류가 되는 시대

인류의 성장에는 지식의 축적과 집단지능의 발전이 있었다. 뉴턴의 말처럼 인류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 선조들의 지혜에 큰 은혜를 입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동안 축적한 경험만으로 “나 때는 말이야”라고 쉽게 말하기엔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졌다. 농경사회에서는 나이 먹을수록 지혜로워지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지혜보다는 오류가 될 염려가 더 커졌다. 

 

그러므로 이제는 예전 지식을 머릿속에 무작정 많이 욱여넣는 것보다는 새로운 것에 대한 지적 호기심과 그에 따른 유연한 사고가 더 중요해졌다. 지적 호기심은 성장의 양분과도 같아서, 호기심의 문을 닫아버리면 과거에 그대로 멈춰버리고 만다. 말 그대로 꼰대가 되는 것이다. 꼰대는 나이 많은 이가 아니라 과거의 지식과 경험에 안주하고, 지적 호기심과 사고의 유연성을 잃어버려 변화에 민감하지 못한 고집 센 사람을 일컫는다.

 

즉, 10대에 지적 호기심을 닫아버리면 10대에 꼰대가 되고, 30대에도 끊임없는 지적 호기심을 갖고 있으면 꼰대가 아니다. '인생'이라는 시스템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변화와 안정의 균형을 맞춰야 하고, 그 균형을 위해서는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지적 호기심과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 그렇지 못하다면 2억 년 가까이 지구의 주인으로 살아가던 공룡이 거대한 운석의 충돌로 갑자기 멸종했듯이, 우리도 어떤 우발적인 변수로 맥없이 쓰러져버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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