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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토리텔링

차원을 넘나드는 이야기 [일반 상대성 이론, 블랙홀, 웜홀]

by 사이언스토리텔러 2020.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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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에 했던 특이한 소개팅 썰을 푼다. 호피무늬 타이즈를 입은 그녀의 첫 등장부터 강렬했다. 그땐 호피무늬를 받아들일정도로 마음이 관대하지 않았다. 카페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2차를 가기 위해 밖을 나왔는데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냥 맞으면서 걷기엔 좀 굵은 비가 내렸는데 자기는 비 맞으면서 걷는 걸 너무 좋아한다며 유유히 걸어 나가는 뒷모습을 보는 나로서는 심히 문화 충격이었다. 이슬비라면 모를까.. 그 걸음은 분명 비를 피하기 위한 걸음이 아니라 비를 맞아야겠다는 결연의 의지가 담긴 걸음이었다. 약간 그런 느낌이었다. 비련의 여주인공에 빙의한 호랑이. '얼른 와요^^' 하며 말을 건네는데 좀 무서웠다. 

 

우리는 보통사람과 다르거나 특이한 정신세계를 보유한 사람을 4차원이라 한다. 하지만 4차원이 이렇게 사람의 특이 성격만으로 치부되기엔 얼마나 무궁무진하고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거 같아 물리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 안타까운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점 하나는 0차원이다. 이 점을 수직한 방향으로 쭉 그으면 생기는 선은 1차원이다. 

1차원 선분을 선에 수직한 방향으로 한 번 움직이면 2차원의 면이 만들어지고, 이 면에 수직한 방향으로 면을 움직이면 3차원 입방체가 만들어진다.

이 3차원 입방체를 '수직 방향'으로 한 번 더 움직인다면 입방체를 넘어서는 4차원의 공간을 만들 수 있다. 

4차원을 통하는 방향을 3차원에 있는 여러분에게 보여줄 수는 없지만 그런 방향이 있다고 상상은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코스모스'에서 인용하여 각색한 납작이 나라 이야기

여기 납작이 나라와 같은 우주가 있다. 납작이 나라는 2차원 공간이다. 따라서 납작이 나라 국민은 왼쪽이니 오른쪽이니 하는 것은 구별할 줄 안다. 물론 앞과 뒤도 안다. 그러나 위와 아래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몇몇의 현명한 수학자 납작이들만 위와 아래의 개념을 이해한다. 한 수학자 납작이가 자기 동족 여러 명 앞에서 한창 열을 올리면서 위아래에 대하여 연설을 한다. 군중들이 웅성댄다. "무슨 소리야. 위아래가 어디 있어. 어떻게 그게 가능해? 보여줘 봐 어디야?" 아무도 수학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수학자는 군중을 피해 어디론가 사라진다.

 

사실 납작이 나라의 2차원 우주는 3차원으로 구부러져 있다. 납작이들이 자기가 사는 곳에서 다른 장소로 여행한다 해도, 두 장소 사이의 거리가 특별히 멀지 않다면 자기 나라가 구부러진 줄 전혀 깨닫지 못할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납작이 하나가 제 딴에 직선이라고 생각하는 길을 따라 아주 멀리 이동했다. 그는 이상한 현상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여행 중에 어떤 경계를 만난 적도 없고 가던 방향을 바꿔서 되돌아 걷지도 않았는데, 출발점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즉 납작이의 2차원 공간은 신비롭게도 3차원적으로 구부러져 있는 것이다. 그가 3차원을 상상하지 못해도 3차원의 존재를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납작이의 이야기에 나오는 차원을 하나씩만 높여 보라. 그러면 납작이의 고민이 바로 우리의 고민이 된다.


 

A4 종이의 중심을 찾으려면 모두 다 가운데 부분을 지목한다. 하지만 2차원으로 생각했던 납작이 우주는 실제로 3차원적으로 구부러져 있기 때문에,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지점이 중심이라 말하기가 힘들다. 사실 2차원 우주의 중심은 3차원에 있다. 다시 말해 A4가 만드는 구 껍질의 중심은 2차원에 있지 않다.  

 

차원을 한단계 높여 3차원과 4차원의 관계로 비유하여 생각해보자.

 

A4 종이 즉, 납작이 나라의 영토는 단지 구 껍질일 뿐이다. 그러므로 2차원 우주 크기는 껍질의 표면적만큼 유한하다. 그렇지만 경계는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경계 바깥의 정체는 질문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우주의 중심은 어디인가? 우주에 경계가 있는가? 있다면 그 경계 바깥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보통 우리는 우주를 3차원으로 생각하고 어딘가에 존재할 우주의 끝을 상상한다. 아직까지 인류는 우주의 경계까지 가보지 못했다. 빅뱅 이후 우주가 어떤 지점을 중심으로 팽창하는지도 알아내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는 납작이처럼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어디까지나 우리가 존재하는 3차원에서는 우주의 경계와 중심을 정의할 수 없다. 왜? 우주는 4차원적으로 구부러져 있기 때문이다. 

 

"4차원은 도대체 어떻게 정의해야 한단 말인가"

 

각 방향에 수직한 공간 변수 x축, y축, z축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1차원에서 3차원까지 늘어났다. 인간은 3차원에 살고 있어서 그 이상의 공간 변수에 대응하는 것을 생각해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때 구세주가 등장했다.

 

아인슈타인은 절대적으로 여겨져 왔던 시간을 상대적으로 보았다. 이는 관찰자의 속력에 따라 물체의 속력이 달리 보이는 것처럼, '시간'이라는 것도 운동이라는 공간 변수가 개입되면 누가 보느냐 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값임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출발하여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이 유기적인 관계로 역여 있다는 '특수 상대성 이론'을 내놓으며 '시공간'이라는 새로운 차원을 제시한다.

 

더 나아가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운동 법칙으로 설명했었던 모든 역학적 운동을 '시공간의 왜곡'이라는 신박한 개념으로 설명하게 되는데, 이를 집대성한 이론이 바로 '일반 상대성 이론'이다.

 

그림에 나와있듯이 질량을 가진 물체는 주변의 시공간을 왜곡한다. 질량이 무거울수록 왜곡이 많이 된다. 따라서 이 구부러진 면을 따라 주변의 물체들이 이동하게 되고, 이러한 시공간의 왜곡이 중력, 더 나아가 만유인력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아인슈타인의 주장대로라면 빛도 왜곡된 시공간을 따라 이동해야만 했다. 하지만 뉴턴 역학에 따르면 질량이 있는 물체에게만 중력; 만유인력이 작용했기에 아인슈타인의 시공간 왜곡 이론은 과학자들에게 영 허무맹랑한 소설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빛이 휘는 걸 본다면 모를까..

 

 

빼박자료 등장// 우리 눈은 꺾인 빛을 직진해서 오는 걸로 판단한다. 수영장 수심이 보이는 것보다 깊은 이유가 이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빛이 정말 휜다는 게 밝혀졌다. 에딩턴이 개기일식 때 관찰한 자료의 등장을 기점으로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은 떡상한다. 이로써 '시공간'이라는 새로운 차원이 완전히 허무맹랑한 것이 아님이 밝혀졌다. 게다가 뉴턴이 설명하지 못한 만유인력의 원인은 질량에 의한 시공간 왜곡 때문이라는 아인슈타인의 의견에 힘이 실리게 된다.

 

"정신과 시간의 방이 가능할까?"

벼락치기들이 꿈꾸는 공간

어떤 공간은 시간이 빨리 가고 어떤 공간은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게 말이 될까? 이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시간을 절대적으로 보고 있단 셈이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광속에 근접하는 빠른 속력으로 움직이는 공간의 시간은 정지해 있는 공간의 시간보다 상대적으로 느리게 흐른다. 이건 팩트다. SF영화가 아니다. 특수 상대성 이론이 작동하기 때문에 우리가 GPS 서비스를 이용해서 포켓몬을 잡고 다녔다. 운동에 의한 시공간의 왜곡은 시간의 흐름에 변형을 가했다. 그렇다면 질량이 무거운 물체가 시공간을 왜곡한다면 그 주변의 시간도 느리게 가지 않을까? 

 

중력 적색 편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뷰리풀한 이유다. 딱딱 들어맞는 결과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시공간이 왜곡된 정도가 클수록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지구에서 1년이 지날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면, 지구보다 질량이 큰 천체 기준으로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만큼 느리게 흐른다. 즉 정신과 시간의 방 같은 구조를 구현하는 것은 가능하긴 하다. 

 

다만 정신과 시간의 방은 지구보다 중력이 큰 곳이라는 설정이었기에 사실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 시간이 느리게 가야 한다. 따라서 만화의 설정이 반대로 바뀌어야 한다.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의 하루가 밖에서는 1년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만화는 만화로 보자.

 

"블랙홀과 웜홀"

 

만약에 질량이 어마 무시하게 큰 천체가 있다면 그 천체 주위의 시공간은 엄청나게 왜곡될 것이다. 이 엄청난 왜곡으로 인해 빛조차도 빠져나오지 못하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데, 이 천체를 블랙홀이라고 부른다. 블랙홀 내부에서는 중력이 너무나도 강하다 보니 시간이 느리다 못해 아예 정지해버린다. 

 

'처음과 끝은 함께 공존한다.', '필시 들어가는 곳이 있으면 나오는 곳이 있다.'는 논리에 상상력이 더해져 웜홀과 화이트홀이라는 개념이 나오게 됐다.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사물이 웜홀을 통해 이동하다가 화이트홀로 빠져나온다는 설명이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와 영화 '인터스텔라'에 웜홀이 등장한다.

 

 

 

2차원 표면에 3차원 공간에 존재하는 통로를 뚫어 2차원 도착지에 더 빨리 도달하게 됐다. 이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 우주도 4차원을 경유하는 길이 있지 않을까 상상한 결과가 웜홀이다. 윔홀을 통해 사과의 벌레처럼 차원을 관통하여 빠른 시간 안에 우주 저 멀리 이동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공상에 빠져보게 된다.

 

우리는 웜홀의 존재 여부를 모른다. 그렇지만 웜홀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것들은 우리 우주의 어떤 곳과 반드시 연결돼 있지 않겠는가? 한발 더 나아가서 한 우주와 다른 우주를 연결할 수도 있다. 통상적으로 평행 우주론에서 다루는 각각의 우주는 상대방의 존재를 알아챌 수 없도록 서로의 지평선 너머에 떨어져 있지만, 그 사이에 정보 교환은 웜홀을 통해 이루어질 수도 있다. 어떻든 여러 개의 우주들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한 우주가 다른 우주를 감싸면서 우주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계층 구조를 이루고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확장된다.

 

 원자 미시 세계 - 분자 - DNA - 세포 - 사람 - 지구 - 태양계 - 은하 - 관측가능한 우주 // 우주와 원자의 미시구조가 비슷해 보인다.   

나의 우주, 관점을 바꿔보면 전자에게 있어 우리가 우주다. 더 나아가면 전자는 어떤 소립자 입장에서 우주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계층 구조는 무한히 계속된다. 

 

미시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탄생한 슈뢰딩거 방정식

현재 과학자 사이에서 합의된 전자의 구조는 통상적인 입자가 아니라 원자핵 주위에 퍼져있는 구름 형태다. 전자 단위의 미시 세계에서는 우리 상식에 통용되지 않는 현상들이 발생하기 때문에 역시 상식이 허용하지 않는 불확정성 확률론적 접근이 들어간 설명이 필요하다. 상식이 적용되지 않는 거시 세계처럼 미시 세계도 어쩌면 3차원이 아닌 다른 고차원적 접근이 필요한 공간이 아닐까? 그러한 수요에 의해 슈뢰딩거 방정식이 탄생했다. 즉 상식을 벗어난 미시 공간으로의 접근을 인간의 언어로 풀이한 것이 슈뢰딩거 방정식이다.

 

언젠가 우주를 비롯한 거시 세계로의 접근을 인간의 언어로 풀이할 날이 오게 될까? 차원을 넘나드는 이야기가 우주에도 적용될 날이 오기를... 그리고 그 이야기의 작가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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