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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통

정체성을 찾는 험난한 과정

by 사이언스토리텔러 2020.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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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  햄릿

"내꺼 인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  소유 & 정기고

 

'햄릿 증후군'은 우유부단을 나타내는 햄릿의 대사처럼 정보 과잉 시대에 넘쳐나는 콘텐츠와 상품들로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선택 장애를 앓고 있는 현대인을 빗대어 표현한 신조어다. 과거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결정의 순간에 '썸'의 긴장을 타는 듯하다.

 

최근 들어 IT기기 보급의 보편화와 SNS의 성장 덕분에, 대중은 더 많은 광고와 정보 속에서 갈팡질팡하며 고통을 받고 있다. 그 고통을 경감하기 위해 선택지를 줄여줄 수 있는 누군가나 미디어에게 의존하게 된다. 좋은 게 좋은 거 다며 자연스럽게 다수결에 편승한다. '나'다운 것이 실종되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는 듯하다.

 

 

나다운 게 무엇인지 고민하고, 더 나아가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탐색을 하기엔 삶이 너무나 각박하고 하루하루가 바쁘지 않냐는 옹졸한 핑계를 만드는 우리다. 더 최악은 고민해본다고 해도 바로 답이 나오지 않을 막연한 자기 성찰에 대한 접근이 부담스러워 단지 '귀찮아.. 그냥 되는대로 살래'라는 식의 우를 범하는 경우다.

 

 

사실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붕어빵 만들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답을 빨리 내려다 보니 붕어빵 틀에 찍혀 나오는 개성 없는 붕어빵이 되어버린다. 심지어 그 붕어빵조차도 빨리 만든답시고 대충 시늉만 낸다면 붕어죽이 되던가 흑붕어구이와 같은 이도 저도 아닌 요상한 결과물이 나오는 안타까운 참사를 마주치게 된다.

 

 

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만큼이나 막연한 활동이 또 있을까? 그리고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시간보다 더 오래 걸리는 활동이 있을까? 너무나 막연하고 기나긴 여정이 요구되는 활동이기에 정신적 에너지의 어마어마한 소모 역시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를 역으로 생각한다면, 어마어마한 정신적 에너지가 소모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도전했었고, 지금도 도전하고 있는 자아성찰의 가치가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를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도전의 역사는 아주 오래전부터 고대의 많은 학자들로부터 시작되었고, 우리가 평상시에 숱하게 들어온 이 문장이 자아성찰의 본질을 꿰뚫는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의 스토리를 차용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킹'은 주인공이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내용으로 주를 이룬다. 

스카의 교활한 계략에 의해 프라이드 랜드의 통치자인 무파사가 죽게 되고 프라이드 랜드에서 도망치던 심바는 탈진하여 쓰러진 채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다. 이때가 나타나 심바를 구한다. 티몬과 품바는 정글에서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알려주며 과거의 나쁜 기억에 대해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 근심과 걱정을 모두 떨쳐버리자는 그들의 인생철학 '하쿠나 마타타'를 가르쳐준다. 심바는 티몬과 품바와 함께 프라이드 랜드에서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며 어른으로 성장한다. 그러던 중 심바는 어릴 적 같이 놀던 암사자 날라를 만나게 되고, 날라는 심바에게 프라이드 랜드에 많은 문제가 있으니 돌아와 왕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심바는 하쿠나 마타타를 말하며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결국 심바와 여친은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서로 화를 내며 헤어진다.

 

자신 때문에 아버지 무파사가 죽은 과거를 생각하며 슬퍼하던 심바 앞에 라피키(제사장 원숭이)가 나타나고, 심바가 라피키를 귀찮아하며 누구냐고 묻자 라피키는 반대로 심바에게 '너는 누구냐'라고 묻는다. 라피키는 멘붕에 빠진 심바를 물가로 데려가 물에 비친 반영을 유심히 들여다보게 한다. 그러자 심바의 앞에 무파사의 영혼이 나타나고, 심바에게 '네가 누구인지 잊지 마라.'라고 말한다. 과거를 마주해야 하는 것에 주저하고 있던 심바에게 라피키는 이런 말을 한다. '과거는 상관없다. 단지 과거로부터 도망치거나 과거로부터 배우는 것은 너의 선택이다.' 

 

심바는 몇십 년간 타지에서 방황하다 각성하여 고향으로 돌아와서 스카와의 생사를 건 싸움을 거쳐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하게 찾을 수 있었다.


카우보이 인형 우디는 앤디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장난감이다. 그는 앤디의 수많은 장난감들의 리더였고 모든 장난감들 역시 그를 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앤디는 버즈라는 새로운 장난감을 선물로 받는다. 버즈는 날개, 열리고 닫히는 헬멧, 디지털 녹음된 음성 지원, 레이저 발사 등과 같은 최첨단 기능을 가진 우주 특공대원 장난감이었다. 앤디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 1위는 순식간에 우디에서 버즈로 바뀌게 되고, 다른 장난감들도 우디보다 버즈를 더 따르게 되며 우디는 하루아침에 2인자로 전락해버린다. 우디는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린 버즈를 시기하고 질투하며 자신이 진짜 우주전사라고 믿는 버즈에게 넌 그냥 장난감일 뿐이라며 면박을 준다. 그러나 그러한 우디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버즈는 자신이 진짜 우주전사인 것 마냥 행동한다. 필자가 어렸을 적에 정말 재밌게 봤었던 영화가 토이스토리 1이었다. 나이 먹고 다시 보니 토이스토리 1도 라이온킹과 마찬가지로 정체성을 찾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게 눈에 띄었고, 그 정체성을 찾는 주인공은 버즈였다.

 

운이 좋아 자신의 역량을 초과하는 결과를 만나게 됐을 때 우쭐대는 것보단 겸손해야겠다는 것을 깨닫게 된 장면

 

영화 초반에 버즈의 모든 것이 못 미더웠던 우디는 버즈에게 '넌 날지 못하는 장난감'일 뿐이라며 면박을 주는데, 이를 반박하기 위해 버즈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앤디의 방안을 날았다. 

실은 아다리가 잘 맞아서 나는 것처럼 보인 것뿐이었지만,버즈가 날았다는 걸 인정하기는 싫은데 지가 봐도 너무 멋있어서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한참 고민한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나온 우디의 대사.

 

"This isn't flying. This is falling with style.. "

 

 

멘붕에 빠진 버즈 ' 설마 내가 진짜 장난감이라고?'
역시는 역신가..

 

자신이 우주전사가 아니고 장난감이라는 현실이 버즈의 뼈를 강하게 때린다. 존재의 의미를 망각해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버즈는 막 나간다. 하지만 진짜 날 수 있는 우주 특공대원이 아니어도, 단지 장난감이기 때문에 앤디는 너를 세상 최고로 여긴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우디의 말 한마디 덕분에 버즈는 각성한다.

 

"This isn't flying. This is falling with style"

 

영화 후반부에 정체성을 찾은 버즈가 로켓에서 분리되어 떨어질 때 또 아다리가 잘 맞아 누가 봐도 하늘을 나는 그 순간 버즈가 한 말 한마디가 내 심금을 울렸다. 나이 들어 이 씬을 보면 볼 때마다 가슴이 찡해졌다.

 

"이건 나는 게 아니야. 이건 멋지게 떨어지는 거야" 

 

영화 초반에 우디가 한 말을 버즈가 자조적으로 말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곱씹어볼수록 버즈의 철학이 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날지 못하는 장난감이지만, 나는 멋있게 떨어지는 장난감이다. 우주전사라서 멋있는 게 아니라 장난감이라서 나는 멋있는 존재다.'라는 버즈만의 새로운 정체성이 명확하게 반영된 말 한마디가 아닐까?

 

버즈가 자신만의 개성있는 정체성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현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그에 따른 자기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험난한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구축할 수 있었던 심바와 버즈의 이야기를 통해 나만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우리가 최소한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한번 정도는 고민해봐야 되지 않겠는가?

 


물리학의 '에너지 보존 법칙'과 연관 지어서 포스트 감상문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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