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각통

우리는 미미쥬쥬다.

by 사이언스토리텔러 2020. 5. 27.
728x90
반응형
728x170

비운의 수학자 앨런 튜링

튜링 테스트에 따르면 컴퓨터가 마음을 갖고 있는지 알려면 컴퓨터 그리고 사람과 동시에 소통해야 한다. 이때 당신은 어느 쪽이 컴퓨터이고 어느 쪽이 사람인지 모른다.

당신은 원하는 질문을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상대방과 게임하고 논쟁하고 심지어 장난도 칠 수 있다. 시간도 원하는 만큼 쓸 수 있다.

 

그런 다음 어느 쪽이 컴퓨터이고 어느 쪽이 사람인지 결정해야 한다. 당신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거나 실수하면 그 컴퓨터가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것이고, 그 컴퓨터를 실제로 마음을 지닌 존재처럼 취급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실제 입증이 아니다. 다른 마음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단지 사회적, 법적 관습일 뿐이다.

 

튜링 테스트는 1950년 영국에서 모든 동성애자 남성이 받아야 했던 일상적인 테스트('당신은 이성애자 남성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튜링은 개인적 경험을 통해, 내가 실제로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것은 오직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임을 깨달았다. 튜링은 미래에 컴퓨터가 1950년대의 동성애자처럼 될 거라고 내다보았다. 컴퓨터가 실제로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일 것이다.

 

[출처 - 호모데우스 p.172]


서울 퀴어 퍼레이드와 무지개

동성애자이지만 인위적으로 여자를 밝히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보통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저 사람은 여자를 너무 밝히는 이성애자야" 

 

그는 이성애자로 간주되는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것이다. 뭐 그가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 위장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는 집단 내에서 무의식적으로 통용되는 사회적 동질감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한다.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

 

중요한 건 남들이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동성애자의 개인적 본질'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것이다. 남자를 좋아하는 본래의 형질과는 아무 관계없이, 단지 그가 여자를 좋아하는 척을 하면 사람들은 그를 이성애자로 보듯이...

 

타인이 만든 프레임은 동성애자의 개인적 본질과는 전혀 관련 없다.그렇지만 이 프레임은 그 존재의 사회적 위치에 큰 영향을 준다. 동성애자인 그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살아갈 것이다. 이성애자라 속이고 사는 것이 범법행위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본인이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면서 사회에 선을 베풀 거니까...

 

인공지능

 

다른 예시를 들어보자.

지금보다 발전된 기술덕분에 인공지능이 사람의 형질과 거의 유사하게 설계된다면 어떨까?

가령 사람처럼 희로애락을 느끼고, 감정을 이용한 의사소통을 기반으로 인간과 협력하는 인공지능이 나온다면, 가끔은 내 친구와 애인보다 더 감정 교류가 잘되는 인공지능이 생긴다면 이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단순히 기계 덩어리 정도의 가치를 지닐까?

연인보다 공감을 잘해주고 엄마보다 밥을 잘해주고 세탁, 청소까지 해주고 심지어 친구보다 얘기가 잘 통하 여서 나의 마음에 큰 위안이 되는 존재인데 고장 났다고 가차 없이 버릴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 인공지능을 기계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해야할까?

 

 

사실 인간도 기계와 별 다를 바 없는 존재이다.

인간이란 유전자, 호르몬, 뉴런이라는 부품들끼리의 무작위 한 상호작용으로 인한 선택이 곧 운명이 되는 한낱 자유의지가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 얼마나 충격적인가!

마치 '우리의 삶의 질서를 관장하는 신이 사실은 없었다'라는 것에 비견할만한 충격을 주지 않나?

 

자유의지로 무미건조한 우주를 나만의 우주로 의미를 부여하면서 나만의 이야기를 꾸며가는 인간의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우리의 자유의지와 영혼에 의해 운명이 가꿔지는 게 아니고, 한낱 인간을 이루고 있는 미물 (호르몬, 유전자, 뉴런)이 매뉴얼대로 상호작용한 결과가 자유의지로 발현된 거라니..

그 자유의지와 영혼이 신과 같은 허구적 관념의 일종이라니... 이 얼마나 허무한가!

 

이렇게 생각해볼까?

누우면 눈을 감고 서면 눈이 떠지는 인형이 있다.

어린아이 입장에서는 자기처럼 누우면 눈을 감고 서면 눈을 뜨는 인형에 동질감을 느끼며 마치 살아있는 사람을 다루듯 살갑게 대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어른에게 이 인형이란 단지 기울어짐을 감지하는 중력 센서에 의해서 눈이 떠지고 감기는 알고리즘이 장착되어 있는 고무 플라스틱 인형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더 이상 사랑스러운 미미 쥬쥬는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만약 중력 센서로만 작동하는 단순한 알고리즘이 아니라 더 다양한 변수에 의해 작동하고 더 복잡한 알고리즘에 의해서 운영되는 기계,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그것이 정말 기계인지 의심할 정도로 감히 생각도 못할 만큼 복잡하고 정교한 어떤 것(thing)이었다면 우리는 그것을 기계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우리는 중력을 감지하는 센서에 의해서 눈을 깜빡이는 미미 쥬쥬는 그것이 물건인지 사람인지 충분히 구별할 수 있지만, 더 복잡한 알고리즘을 가지고 있는 그 무언가를 미미 쥬쥬라고 평가절하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실 단지 복잡한 알고리즘을 가지고 있는 미미 쥬쥬이지 않을까?

 

영혼과 자유의지가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전기적 신호와 복잡한 화학적 알고리즘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는 인간이라면 도대체 인간에게 삶의 의미가 무엇일까?

반응형
그리드형

'생각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대인, 그들은 알고 있었을까?  (0) 2020.06.04
나의 고객은 학생  (0) 2020.05.30
여백이 있는 삶  (0) 2020.05.24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고 있어.  (0) 2020.05.16
아이스크림은 먹어야 제 맛이다.  (0) 2020.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