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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통

여백이 있는 삶

by 사이언스토리텔러 2020.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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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금 내 삶의 일부중 내가 쓸데 없이 집착하는 것?

 

A) 수치로 정해진 계획을 그 수치에 맞춰 끝마쳐야 한다는 생각

 

외모가 인생에 전부라 생각했었던 과거의 나(2008년~2015년)에게 하루의 일과는 오로지 다이어트로만 채워져 있었다.  성공의 가늠자 역할을 했었던  '65kg'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식이조절과 운동,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피부 미용을 얼마나 잘해왔는지 쉽고 눈에 보이는 평가를 나 스스로 하기 위해 객관적인 데이터 '수치'를 도입하게 되었고 이는 결국 수치에 집착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뚱뚱했을 때와 날씬했을 때의 사회적 시선이  확 다르다는 것이 체감되었기 때문이다. 살을 빼고 내 세상이 확연하게 달라졌었다.

살을 뺐다는 사실과 다이어트의 혹독한 과정을 이겨냈다는 사실에서 오는 자신감과 달라진 사회적 시선에서 오는 자신감이 시너지를 일으켰다. 이전에 뚱뚱했을 때 감히 상상해보지도 못했을 것들을 살이 빠지고 나서 직접 경험하는 데서 오는 희열감과 재미는 나로 하여금 65kg에 더 집착하게 했다.

 

이처럼 내가 '수치'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던 본질적인 이유를 탐구하기 위해 더 먼 과거로 돌아가본다.

사실 성적이라는 '수치'로 등급이 재단되었던 학창시절에서부터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비교적 최근이었던 2013년 중등 임용과 2019년 1급 정교사 연수까지 이어져 왔다.

하루 동안, 또는 한 분기를, 또는 1년을 잘 보내왔다는 것을 평가하는 시험은 결과를 '수치'로 통보하고 나는  그 '수치'로부터 피드백을 받아왔다. 내가 목표했던 점수를 받지 못하고, 등수를 충족하지 못했다면 잠시 좌절감과 무기력감을 느끼면서 고통스러웠지만 나는 다시 도전했다. 

내가 '수치'에 집착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러한 '수치'라는 객관적 데이터를 통해 평가를 받거나 평가를 스스로 하는 과정에서 희열감도 맛보고 좌절감도 맛보면서

결국 소정의 목표를 이루게 되었고 지금의 내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더 이상 수치로 평가받지 않아도 되는 안정적인 삶을 닦아놓았지만(교사되면 됐어), 인간인지라 생기는 끝없는 욕심으로 인해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서 나는 또 '수치'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다만 이전처럼 성적이나 커트라인과 같은 명확한 수치가 존재할 수 없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들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건강하게 살고 싶고(변함없는 외모), 돈도 벌고 싶고, 자기계발을 위해서 열심히 공부도 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고,  그러면서도 오로지 나를 위한 삶도 살고 싶다는 생각이 그렇다.


1.운동분량(시간, 세트횟수, 주간 해야할 근력운동, 등산횟수) /건강&외모

2.하루에 읽어야 할 책 페이지수와 권 수 /지적계발

3.하루에 실행해야할 계획의 수 /전반적인 사항

4.치팅 횟수 /건강&외모

5.한 주에 채워야 할 그루밍 횟수 /건강&외모

6.끼니를 먹는 시간, 방탄커피를 마시는 시기와 시간 /건강&외모

7.하루에 마셔야 할 물의 양 /건강&외모

8.신문 분량 /지적계발

9.포스팅 횟수 /지적계발

10.브롤 퀘스트 진척도, 토큰수급 /내 시간

11.취침시각, 수면시간, 기상시각 /전반적인 사항

12.세안의 방법과 식초 패팅, 얼굴 마사지, 알로에쿨링 /건강&외모


그래도 과거보다는 훨씬 나아졌지만 나는 주로 '건강과 외모'에 너무나 큰 집착을 보이고 있다. 가끔은 건강과 외모, 대인관계, 커리어 세 가지가 상충하는 지점에서 어디에 역점을 두어야 하는가와 같은 골치아픈 고민이 생긴다. 가령 나는 계획했던대로 퇴근하고 운동하고 물도 마시고 11시정도에 취침을 하려고 했는데 그날 점심에 갑작스런 술 약속이 잡힌다면? 또는 한 주의 스케쥴을 계획할 때 이 술자리는 1차까지 가야할 지 2차까지 가야할 지 별 시덥잖은 것까지 경우의 수를 계산하며 머리 아파한다든지.. 이제는 재무를 위해 돈과 관련된 변수까지 생각하니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이는 외모와 돈에 집착하기 때문아니겠는가!

 

나도 긴 연휴가 주어진다면 아무 것도 신경쓰지 않고 서울에 방 하나 잡아놓고 댄스학원 수강권끊어놓고 춤도 배우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재미나게 살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왜? 인스턴트를 맨날 사먹어야 되니 건강은 건강대로 해칠 것이고, 돈은 돈대로 나가고, 지금 사귀고 있는 사람도 있고, 공부할 것도 많은데 무슨 춤이냐는 생각들 때문에 춤추는 순간에도 나는 찜찜한 느낌을 버릴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나는 전반적인 지금의 내 삶 자체에 너무나 큰 집착을 하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웃긴게 나는 지금 내 삶에 너무나 큰 만족을 한다는 것이다. 춤 못 배우면 어때? 사람들이랑 술 안마시면 어때? 제주도가서 방잡고 한달 원룸 생활 못하면 어때?

나는 매일 많은 것을 배우고, 배운 것에 대해 생각하고 정리하고,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노래를 들으며 하루하루 새롭고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으며, 가끔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여행을 기획할 정도로 미리 재정계획도 세워뒀는데 굳이 이렇게 행복한 삶을 뒤로한 채 새로운 도전을 하라고? 게다가 난 지금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하는데 세월좋은 꿈타령이나 하면서 내 에너지와 종잣돈을 소모하라고? 

 

그리고 내가 대인관계를 아예 안하는 것도, 돈을 아예 안 쓰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예전부터 시간과 돈만 버리는 의미없는 술자리를 많이 가지면서 부질없다는 걸 깨닫게 되니 술자리를 더 안가지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정서적인 교류와 새로운 깨달음과 자극 동기 부여를 위해 언제든 내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사람과의 만남을 할 수만 있다면 난 언제든지 환영이다. 다만 그러한 것이 술자리에서 만족되지 못했다는 게 문제다. 그저 순간의 즐거움, 깔깔거림 그게 전부였다. 내 소중한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 내 몸을 망가뜨리고 다음날 내 시간마저 망가뜨렸다. 

게다가 이제는 유튜브를 통해 그러한 내 수요가 적시에 충족이 되기 때문에 사람과의 만남에서 오는 갈망이 더뎌지고 있는 것이다.

 

별 시덥지 않은 만남, 나에게 어떠한 귀감도 오지 않을 거 같은, 시간도 아깝고 돈까지 아까운 그런 만남, 차라리 재미라도 있으면, 내가 즐거울 수만 있다면 돈이 아깝지라도 않지 그런 것도 충족시켜주지 않은 즉 내 마음이 와닿지 않은, 그냥 가기가 싫은 자리에 억지로 내 시간과 돈을 투자하지 말자는 것이다. 물론 그런 만남이 꼭 나에게 독이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 만남에서 약이 있을 것이라는 조그만 희망을 품고 내 시간과 돈을 들인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큰 도박이라는 것이다. 차라리 내 시간을 갖는 게 더 낫다.

 

내 맘이 내키고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때 생기는 만남, 내가 가고 싶은 만남이라는 생각이 들 때 내 시간과 돈을 기꺼이 투자하도록 하자. 그게 아니면 냉정해보일지라도 가차없이 거절하자. 

그리고 중요한게 있는데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에서 나는 무엇을 기대하는가? 

나의 커리어 계발? 인맥 닦기? 그런 것을 기대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다는 생각을 버리자. 

왜냐하면 그러한 것(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내 성향에 맞지도 않고 그것은 나를 고문하는 것이다. 뭣하러 내 시간과 돈을 들여 나를 고문하는가? 그 사람이 나랑 맞는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도 않은데 일부러 그렇게 한다? 절대 그러지 말자..

 

내 능력으로 내 길을 닦고난 뒤 나와 뜻이 맞는 사람이 내 주변에 많이 모여드는 그때 인적 네트워크의 힘을 믿자. 애초에 어중이 떠중이같은 인적 네트워크의 힘을 빌어 성공하려는 얄팍한 생각은 접어두자.

 

어렸을 때의 나는 핸드폰과 CD플레이어, MP3플레이어, 노래CD 등 물질에 너무나 큰 집착을 보였다. 생활기스의 방지를 위해 부드러운 천에 꽁꽁 싸매고 누구도 못 만지게 하고  심지어 나 조차도 막 만지지도 못했다. 손때 묻는 것도 싫어서 손을 닦고 만질 정도였고, 게임 아이디도 그런 것들을 차용해 만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고장나고 낡고 부득이하게 생활 기스가 나는 물건들을 보며 '물건에 집착하는 게 정말 부질없구나.'란 생각이 들게 되는 동시에 집착의 대상이 변하게 되었다. 

물질에서 게임 캐릭터로 그리고 대학때 다이어트에 성공하면서 집착의 대상이 외모로 넘어왔었다. 지금은 외모이외에도 총체적인 건강과 자기계발, 지적성취욕구와 같이 형태가 정해져 있지 않은 무형의 것들에게도 집착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핸드폰과 피부를 남이 못 만지게 하는 것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무형의 것들에 대해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내 건강과 외모, 다음 날 맑은 머리를 위해 갑자기 잡힌 술약속을 거부한다.

내 정신적인 건강을 위해 억지로 2차 술자리를 가지 않는다.

내 돈을 아끼고, 건강과 외모를 위해 생각없이 1주일 이상의 여행을 무턱대로 계획하지 않는다. 여행을 가서도 운동하려고 헬스장을 알아본다.

1주일 이상의 연수를 갈 때 헬스장이 있는지 확인한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이 집착이라 부르는 행위들은 나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좋게 승화된 것이고, 내가 이런 고마운 행위를 집착이라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적어도 나는 내가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지 않으려고 용기내어 애쓰는 것 아닌가? 그리고 미래를 위해서 잠깐의 충동을 숙고하는 것 아닌가? 이게 어딜 봐서 집착이라는 나쁜 프레임를 씌워가며 평가절하할 수 있는가!

 

내가 정녕 돈과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모든 사람과의 관계를 일절 끊어버리고, 회식도 아예 참여안하고, 고립된 채 살고 있는가?  그렇지도 않다.

나는 많은 책을 읽고 유튜브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는 것에서 재미를 찾는 사람이라 타인이나 술에 의존하지 않는 것뿐이다. 

게다가 가끔은 삭막하고 심심하고 정서적으로 힘들 때 남들과 대화하며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일말의 여유도 있다. 

 

그리고 지금의 나를 긍정적으로 보고 싶은 것은 건강과 외모 문제가 삶의 전반적인 고민이었던 이전과 달리 지금은 건강과 외모, 자기계발, 재무 고민이 밸런스있게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다만 내가 집착?!하는 분야에는 개인 의지로 조절하기 힘든 다양한 변수가 녹아들어 있고, 그렇기 때문에 구체적인 결과가 나오기 힘들다는 것이 문제다.

건강과 외모, 재무, 자기계발과 같은 분야는 '반 10등 이내 들기, 합격하기'와  달리 끝이 없고 언제 끝이 날지도 모르고, 어떤 변수에 의해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감히 장담하지 못한다. 게다가 이러한 것들은 막연하고 추상적이어서 도달의 여부를 나 스스로 확인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피드백과 동기부여를 위해서라도 눈에 보이는 확실한 결과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모든 것의 수치화'를 탄생시킨 것이다. 가장 객관적이기 때문에 판단하기 쉬운 기준은 결국 숫자이기 때문이다. 

뭔가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을 스스로 파악할 수가 있어야 더 신나서 열심히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수치를 보면서 목표의 도달여부를 가늠하며 목표량이 적절했는지, 너무 많았다면 줄이기도 하고, 너무 적으면 늘리기도 하면서 하루하루 내가 설정한 목표를 지켰는지 체크하는 재미가 있었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뿌듯했고, 반성할 수도 있었다. 

 

갑자기 잡히는 약속과 너무나도 많은 생활 변수들 때문에 정해놓은 계획을 이행하지 못했을 때 나는 어떤 감정을 느꼈는가! 마음이 불편하니 예민해지고, 시간은 없는데 이걸 끝내야겠어서 책이나 신문을 대충대충 읽어 재끼는 짓을 하는 모습이란... 정말 못봐주겠다.

그리고 내가 정한 목표의 도달여부만을 고려해서 내가 정말 업그레이드 됐다고 자만하다가 2019년에 큰 참패를 맛보았다. 디지털컨텐츠 강사나 풍암고 초빙교사 말이다.

열심히 살았으니 보상받고자 했지만, 결과는 만만치 않았다. 내가 이만큼 열심히 살았으니 나는 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성급한 일반화의 원리란... 정말 못봐줄 꼴이다.

 

목표로 정해놓은 수치를 지켰다는 생각은 결국 자기만족밖에 되지 않는다. 왜? 그 계획은 어차피 내 머리속에서 나온 거니까. 내 세상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책 50페이지 읽기라는 계획을 세우고  50페이지를 어떻게든 읽어볼려고 책을 날리면서 읽는 게 진정 의미가 있는가?

한 두페이지만 읽더라고 내가 어떤 큰 깨달음을 얻을 수만 있다면 내가 계획 했던 50페이지를 읽지 못해도 더 큰 목표를 달성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 내 목표는 장기전이기 때문에 길게 바라봐야 한다.

눈 앞에 보인 닥친 것을 소화하기 위해 나 혼자 자기 만족을 위해 정한 수치를 충족하기 위해 발악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나아지고 있다는 것에 집중하여 '수치'에 너무나 집착하는 강박관념을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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