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것은 두렵다. 하지만 신비롭다.
어쩌면 그 신비로움은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무한한 상상력과 영감을 탄생시킬는지도 모른다. 과학은 그러한 상상력과 영감을 밑천 삼아 발전할 수 있었다. 자연의 미스터리를 감싸고 있는 껍질을 한 겹 한 겹 벗겨내면서 밝혀지는 자연의 순리가 앎의 영역으로 전환되는데 과학은 큰 영향력을 기여했다. 동시에 상상력과 영감은 인간의 감수성을 자극하여 다양한 예술 작품과 영화 문학의 원천이 되었다. 이성의 영역인 과학과 감성의 영역인 예술은 모두 자연을 근간으로 했기에 서로 맞물려 움직이는 톱니바퀴처럼 함께 나아가는 상호 호혜의 관계를 이루며 많은 사람들에게 인문과학적 통찰을 제공했다.
아직까지도 현대 과학이 규명하지 못한 인간의 뇌과학과 우주의 미스터리는 적어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게 만큼은 지대한 인문과학적 통찰을 제공했음에 틀림없다. 뇌신경 과학에 기반한 영화인 '인셉션'에서는 꿈속의 꿈속의 꿈, 즉 꿈의 바닥인 인간 무의식의 최고 낮은 3단계(림보)까지 가면 우리가 현실과 꿈을 구분하기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마치 장자의 '호접몽'을 연상시킨다.
"나는 진짜 현실에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깊은 꿈속에 살고 있는 것일까"
어느 날 장자가 꿈을 꿨다. 꿈속에서 자신은 나비가 되어 꽃밭을 날아다녔다. 그런데 꿈에서 깨어난 장자는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장자가 나비의 꿈을 꾼 것인가, 아니면 지금은 나비가 장자라는 인간이 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꿈인지 현실인지에 대한 구분의 무의미함은 더 나아가 크고 작음, 아름답고 추함, 선하고 악함, 옳고 그름을 구분하려는 욕망 역시 덧없는 것일 뿐이라는 인식으로 나아가게 되었으며, 이는 인생의 덧없음과 무위자연을 근간으로 하는 '도가 사상'의 발전에 밑거름이 되었다. 자연에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는 태도인 '무위자연'이 꿈을 현실로, 현실을 꿈으로 생각한 역발상에 기초했다는 모순이 참 흥미롭다.
하지만 인셉션 주인공에겐 현실이 덧없지 않았다. 남아있는 가족을 위해서 현실로 돌아와야만 했다. '가족애'라는 코드를 엮어 감독은 림보에서처럼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조작하며 살아가지는 못해도 현실은 충분히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한다. 이러한 감독의 '가족애' 코드는 다음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제대로 포텐이 터진다.
"과거로만 돌아갈 수 있다면 인간은 후회하지 않을까?"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은 24시간으로 똑같다. 하지만 어떤 이는 시간을 금처럼 여기며 살고 어떤 이는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라며, 애먼 시간을 죽이면서 산다. 그리고 '그때 좀 더 열심히 살 걸..'이라는 후회와 함께 과거를 반성한다. 그러한 대다수 인류의 후회는 여러 타임 슬립물에 소개됐던 '타임머신' 탄생에 일조했다. 정말로 타임머신이 개발되어서 과거, 현재, 미래를 왔다 갔다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러한 시간 여행은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는 빠르기는 조절 가능하다. 즉, 드래곤볼에 나오는 '정신과 시간의 방' 같은 환경을 만들 수는 있다.
시간을 절대적으로 보지 않았던 아인슈타인의 역발상은 시간과 공간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로 엮여있고(특수 상대성 이론), 이러한 시공간의 왜곡으로 중력을 설명(일반 상대성 이론)하는 매우 혁신적이고 뷰리풀한 상대성 이론을 탄생시켰다. 이 상대성 이론을 기반으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인터스텔라'를 만들었다. 물론 영화가 모두 팩트에 근거를 둔 것은 아니다. 주인공이 과거의 자신과 조우하는 5차원 공간과 5차원 공간으로 이동하는 통로였던 웜홀은 어디까지나 픽션이지만, 상대성 이론에 근거한 시공간의 왜곡과 블랙홀의 물리학적 팩트를 '가족애의 소중함'이라는 메시지로 포장한 영화 인터스텔라는 정말 일품이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상상력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이제는 주인공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오간다. 밑도 끝도 없이 시간을 거스르는 미래 기술이 탄생한 것이 아니다. 놀란으로 하여금 '인버전'이라는 시간을 거스르는 신기술의 영감을 떠오르게 한 것은 물리의 열역학에서 다루는 '엔트로피'라는 개념이다. 자연이 추구하는 무질서함을 엔트로피라고 한다. 깨진 유리컵이 깨지기 전으로 복원되고, 확산된 잉크 방울이 한 점으로 모이고,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은 현실에선 절대로 불가능하다. 놀란은 이론상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올 수 있는 가역 과정에서의 엔트로피 변화에 착안하여 '인버전'이라는 신기술을 상상한 것이다.
"역발상의 미덕"
이처럼 불가능을 가능으로 인버전하는 것의 기저엔 역발상이 있었고, 그러한 역발상에서부터 탄생과 재창조가 시작되었다. 역발상으로 탄생한 장자의 '도가 사상'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크리스토퍼 놀란에게 있어서 어마어마한 상상력과 감수성의 보고였고, 크리스토퍼 놀란만의 색깔이 덧입혀진 재창조 덕분에 우리는 인문과학적 상상력을 품을 수 있는 문화적 수혜를 받았다. 게다가 이러한 역발상은 우리에게 기술적 수혜를 선사하기도 했다. 많은 사례들을 과학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이번 포스트에서는 에너지 혁신을 일으켜 에너지 역사를 다시 쓴 '마이클 패러데이'를 조명하고자 한다.
"전류가 자기장을 만든다"
때는 1820년, 덴마크의 한적한 시골 학교의 한 교사에 의해 자기력의 비밀에 대한 힌트가 밝혀지는 것으로 역사는 시작된다. 이 교사는 전류의 열작용을 확인하기 위한 실험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던 중 이상한 것을 발견한다. 분명히 주위에 자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나침반의 바늘이 까딱까딱 움직인다는 것을 말이다. 더 이상한 것은 도선에 전류가 흐르는 순간에만 바늘이 까딱까딱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 이상한 현상을 발견한 교사는 바로 외르스테드이다. 그는 나침반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전류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류가 흐를 때 도선 주위에 자기장이 만들어지고 이 자기장에 의해 나침반의 바늘이 움직이는 게 아닐까 추측을 한다. 이러한 외르스테드의 발견은 앙페르의 실험을 통해 전류와 자기에 관한 앙페르 법칙으로 탄생하게 되고, 이로써 전기 현상이 자기 현상에 의해 유도됨을 과학자들은 공공연히 확인하게 되었다.
"자기장이 전류를 만드는 역과정이 가능하지 않을까?"
패러데이는 외르스테드의 발견에 영감을 받아 역으로 '자기장이 전류를 유도하는 과정이 가능하지 않을까'란 가정을 했고, 1831년에 간단한 실험을 통해 자신의 가정이 옳음을 확인했다.
패러데이는 코일에 막대자석을 넣었다 뺐다 했을 때 검류계 바늘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했다. 검류계 바늘이 움직인다는 것은 코일에 연결된 전선에 전류가 흐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자석의 자기장이 코일의 전류 흐름을 유도한 결과임에 틀림없었다. 다만 패러데이는 몇 가지 이상한 상황을 캐치했다.
1. 자석이 움직일 때만 검류계 바늘이 움직임
2. 자석의 세기를 증가시켜주고, 코일을 많이 감을수록, 자석의 이동을 빠르게 할수록 바늘이 큰 폭으로 움직임
3. 자석이 코일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바늘의 움직이는 방향이 바뀜
패러데이는 이 세 가지 상황을 종합하여 자신만의 직관을 발휘하여 분석한 뒤 다음과 같은 '패러데이 법칙'을 완성한다. 이 패러데이 법칙은 사실 여러분들이 익히 알고 있는 역학의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전자기학 현상에 맞게 각색된 것이다.
막대자석 주위에 생기는 자기장의 세기는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이 거리에 따라 불균일한 분포를 보인다. 따라서 코일에 자석을 넣었다 뺐다 하면 일정 면적을 지나는 자기력선의 수가 변화할 수밖에 없다. 이때 어떤 면적을 지나는 자기력선의 수를 '자속'이라 한다. 자속은 해당 면적(A)에 자기장의 세기(B)를 곱하여 구한다.
자속 Φ 이란?
단위 면적을 지나는 자기력선의 수로써 면적에 자기장의 세기를 곱한 값이다.
Φ=BA (B: 자기장의 세기, A: 자기장이 지나는 면적)
즉, 자석을 코일에 넣었다 뺐다 하면 코일을 통과하는 자속이 변한다. 이러한 시간에 따른 자속의 변화율이 전류를 흐르게 하는 능력인 전압을 유도하고, 그에 따라 코일에 전류가 흐른다. 이러한 현상을 '전자기 유도'라 하며, 유도된 전압을 '유도 기전력', 유도된 전류를 '유도 전류'라 한다. 하지만 자석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다면 코일을 지나는 자속이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기 때문에 자속의 시간 변화율이 0이 되어버려 유도 기전력이 생기지 않아 전류가 흐르지 않는다.
자속의 시간 변화율이 커지면 커질수록 유도 기전력이 세져 더 센 전류가 흐를 수 있음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따라서 자석의 세기나 자석의 이동 빠르기를 증가시켰을 때 더 센 전류가 흐른다.(비유를 하자면 같은 거리를 더 짧은 시간 동안 이동했다든지, 같은 시간 동안 더 많은 거리를 이동한 경우에는 시간에 대한 거리 변화율이 크다는 것이고 우리는 이를 속력이 크다고 정의했다.) 그리고 코일을 감은 횟수를 증가시킬수록 유도 기전력이 세지는 식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코일을 많이 감으면 더 센 전류가 흐르게 된다.
따라서 검류계 바늘이 큰 폭으로 움직인다.
그렇다면 패러데이 법칙의 (-)는 무엇을 의미할까?
일단 중3 때 배웠던 내용을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솔레노이드(코일)에 전류가 흐르면 자기장이 생기게 되는데 이때 전류의 방향과 자기장의 방향을 그림과 같이 오른손을 이용하여 쉽게 구할 수 있다. 오른손의 네 손가락을 전류가 흐르는 방향으로 감쌀 때 엄지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이 자기장이 나가는 방향이다. 따라서 왼쪽이 자석의 N극에, 오른쪽은 자석의 S극에 매칭 된다.
운동하는 물체는 계속 운동하려고 하고, 정지해 있는 물체는 계속 정지해있으려고 한다. 이처럼 물체는 변화를 거부하여 본래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관성'이라는 성질을 가지고 있고, 자연도 이러한 관성처럼 때로는 변화를 거부하여 자신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전자기 유도 현상이 딱 그런 경우인 셈이다.
자석의 N극이 코일에 가까이 오면 코일은 N극이 접근하는 것을 거부하기 위해 코일의 윗방향으로 나가는 자기장을 유도한다. 따라서 자석과 코일의 자기장간에 척력이 발생한다. 반대로 N극이 코일에서 멀어지면 코일은 그러한 변화를 거부하기 위해 코일의 윗방향으로 들어오는 자기장을 유도한다. 따라서 자석과 코일의 자기장간에 인력이 발생한다. 이처럼 전자기 유도 현상은 코일을 지나는 자속의 변화를 방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그러한 자연의 청개구리 성향을 (-)로 표현한 것이다.
1. N극이 가까이 접근 → 이를 거부(척력 필요) → 유도 전류가 코일 윗방향으로 나가는 자기장(N극) 유도
2. N극이 멀어짐 → 이를 거부(인력 필요) → 유도 전류가 코일 윗방향에서 들어오는 자기장 (S극) 유도
3. S극이 가까이 접근 → 이를 거부(척력 필요) → 유도 전류가 코일 윗방향에서 들어오는 자기장(S극) 유도
4. S극이 멀어짐 → 이를 거부(인력 필요) → 유도 전류가 코일 윗방향으로 나가는 자기장 (N극) 유도
이처럼 전자기 유도 현상에 의해 코일에 유도되는 전류는 코일을 지나는 자속의 변화를 방해하는 방향으로 흐르는데 이를 '렌츠의 법칙'이라 한다.
코일 근처에서 자석을 움직이면 코일에 생기는 유도 전류에 의해 자석은 운동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힘(저항력)을 받는다. 따라서 자석을 계속 움직이기 위해서는 자석에 추가적인 힘을 주어 일(W)을 해야 하는데, 이 사람이 한 일(W)이 코일에서 전기 에너지로 전환된다. 즉 렌츠의 법칙은 유도 전류가 흐르는 회로에서의 에너지 보존을 나타낸다.
만약에 자연이 렌츠의 법칙이라는 장치를 마련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코일은 들어와서 나가는 자석을 거부하지 않고 되려 환영한다. 즉, 사람이 자석에게 일(W)을 해주지 않아도 들어갈 때보다 빠른 속력으로 솔레노이드를 빠져나갈 것이다. 이 자석의 운동에너지 증가분은 누구로부터 온 것인가? 전자기 에너지? 그렇다면 이 전자기 에너지의 감소분은 누가 채워주는가? 공짜는 없다. 자연은 이러한 모순되는 상황을 애당초에 만들지 않는다.
에너지가 보존되어야 하는 만고 불변의 물리학 규칙을 지키기 위해 자연은 '렌츠의 법칙'이라는 장치를 마련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한 자연의 숭고한 의도를 렌츠는 (-)로 간결히 표시했다.
전자기 유도가 활용되는 사례 중의 으뜸은 '발전'이 아닐까 싶다. '발전'이란 전기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이다.
역학적 에너지, 화학 에너지, 핵에너지, 열 에너지로 전기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전자기 유도'가 수반된다. 그 덕분에 우리는 콘센트를 꽂기만 하면 전기 에너지를 편하게 쓸 수 있는 기술적 수혜를 받으며 산다.
사소하다면 극히 사소한 역발상 하나가 우리 삶에 얼마나 큰 편의를 제공했는가! 장자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포스트를 매듭짓고자 한다.
장자의 나비 꿈 이야기를 들은 제자가 장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스승님, 스승님의 이야기는 실로 그럴듯하지만 너무나 크고 황당하여 현실에서는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자 장자가 말하기를, “너는 쓸모 있음과 없음을 구분하는구나. 그러면 네가 서있는 땅을 한번 내려다봐라. 너에게 쓸모 있는 땅은 지금 네 발이 딛고 서 있는 발바닥 크기만 한 땅이다.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 땅은 너에게 쓸모없다. 그러나 만약 네가 서있는 지점을 뺀 나머지 땅을 없애버린다면 과연 네가 얼마나 오랫동안 그 작은 땅 위에 서 있을 수 있겠나?”
“너에게 정말 필요한 땅은 네가 서 있는 그 땅이 아니라 너를 떠받쳐주고 있는, 바로 네가 쓸모없다고 여기는 나머지 부분이다.”
평상시에 쓸모없어 보일 정도로 사소한 생각이나 사물을 유심히 살펴보면 낯익은 게 낯설게 보이기도 한다. 낯선 것은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한다. 역발상의 원천은 그러한 호기심과 상상력이다. 기회는 모든 곳에 포진해 있다. 다만 그 기회를 내 몫으로 잡는 건 나 하기 나름이다. 타성에 젖은 삶에 변화를 주는 과정에 마이너스의 고통이 수반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그래서 두렵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러한 관성을 거스르고, 역발상을 통해 쓸모없는 것이 실은 쓸모 있는 것임을 알게 되는 신비로운 기회를 거머쥐길 바란다.
낯선 것은 두렵다. 하지만 신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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