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자연스러움에 깃들어 있는 엔트로피
흘러가는 세월은 얼굴에 주름이라는 골짜기를 만들고, 볼링공을 맞는 볼링핀과 깨진 유리잔의 파편은 마음대로 흐트러지고, 섞어지는 물감이 종잡을 수 없는 색깔로 변하는 이 모든 과정들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이 모든 과정에서 계의 엔트로피가 증가하기 때문이고, 이는 열역학 제2법칙을 만족한다. 하지만 쓰러진 볼링핀이 스스로 정렬되고, 깨진 유리컵이 스스로 복원되고, 얼굴의 주름이 스스로 펴지고, 섞인 물감이 섞이기 전으로 분리되는 현상들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이들은 계의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부자연스러운 현상으로써 열역학 제2법칙을 위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섞인 물감이 섞이기 전으로 분리되는 이상한 현상이 있다.
섞인 물감을 되돌리다
이처럼 외부 조작을 비롯한 에너지가 계에 개입되면 원래대로 되돌릴 수는 있다. 쓰러진 볼링핀을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으면 내 에너지를 쏟아부어 가지런히 정리하면 된다. 유리컵을 복원하고 싶으면 파편에 열을 가해 공예를 하면 된다. 얼핏 봤을 때 원래대로 돌아가며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과정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모두 다 하나같이 외부 에너지가 개입되어 전체 계의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현상이다. 따라서 이 모든 현상들은 열역학 제2법칙을 위배하지 않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삶을 되돌리다
우리의 인생은 한 줄기 유성처럼 처음과 끝이 정해진 직선처럼 느껴지겠지만, 해와 달이 뜨고 지는 세월(歲月)이 돌고 또 돌듯이 그 섭리에 얹혀사는 우리의 인생 역시 뱅글뱅글 돌아가는 회전목마와 같다. 인생이 회전목마와 같다는 메시지를 담은 영화 한 편을 소개한다. 바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I18jGjBXCGI
영화 중간중간에 소피의 얼굴이 회춘하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하울을 향해 커져가는 감정을 조금씩 표현하는 순간이라든지, 하울을 대변하여 국왕에게 전쟁과 하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할 때, 특히 하울을 구하기 위해 희생하는 순간과 하울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의 소피 얼굴은 너무나도 앳되어 보였다. 저주를 받기 전 뭔가 촌스러웠던 얼굴의 소피는 영화 후반으로 가서는 네이비와 백발이 잘 받는 쿨톤 미녀가 되어 있었다.
왜 작가는 늙어버린 소피의 얼굴을 특정 순간에만 젊게 표현했을까? 어쩌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외면한 채 자신을 옭아매는 현실의 무게에 짓눌리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수동적인 삶이야말로 이미 죽어버린 삶이라는 것을 작가는 소피의 늙은 얼굴로 꼬집고 싶었던 게 아닐까? 반면에 본인의 감정과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표현하고 행동하는 삶이야말로 살아있는 삶임을 역설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내가 슬플 때마다
이 노래가 찾아와
세상이 둥근 것처럼
우리 인생은 회전목마
우린 매일 달려가
언제쯤 끝나 난 잘 몰라
빙빙 돌아가는 회전목마처럼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빙빙 돌아올 우리의 시간처럼
인생은 회전목마
우리 인생은 회전목마
째깍째깍, 무미건조하게 돌아가는 시곗바늘. 그 리듬에 맞춰 흘러가는 삶이 무료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남들의 시간은 앞으로 쭉쭉 나아가는 것 같은데, 왜 내 시간은 쳇바퀴처럼 하릴없이 제자리만 도는 거 같은지.
분명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제자리였음을 알게 됐을 때 느껴지는 시간에 대한 배신감.
그 어설프고 초라한 시간의 째깍거림에 삐걱거리는 삶, 그 틈새에 스스로도 확신이 없는 불안이 쌓여간다.
뜨거웠던 이상은 차가운 현실에 식어가고, 뚜렷했던 목표는 희미한 공수표로 바래져 가는 듯한 불편함.
빙빙 돌아가는 회전목마와 같은 인생이라는 건, 시곗바늘을 따라 돌아가는 나의 모든 시간들에 작용하는 구심력이 있음을 뜻한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열망, 성공에 대한 갈망, 오늘보다 더 나아질 내일에 대한 희망, 나와 우리의 행복에 대한 소망. 삶의 중심에 깃든 이 모든 염원들은 시간의 구심력으로써의 역할을 한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삶의 중심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듯한 '현타'라는 원심력은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그러나 현타는 실재가 아니고 어디까지나 주관적 느낌이 만드는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나를 이끄는 실재는 바로 삶의 중심에 깃든 그 모든 염원들이다.
우린 매일 달려가, 언제쯤 끝나 난 잘 몰라
결국 긴긴 원을 돌아 제자리라는 건, 수없이 흔들려도 중심을 잡고 달려 나가는 여전한 나를 마주하기 위함이다. 스스로의 초라함을 이겨내며 의미 없어 보이는 일을 5년, 10년, 15년씩 하는 사람들만이 결국에는 자기 분야에서 자기만의 무언가를 가지게 된다. 삶이란 원래 그렇게 어설픈 나날들, 우습고 비웃어주고 싶은 시간, 스스로도 확신 없는 불안으로 쌓아간 순간들이 만들어내는 무엇이 맞을 것이다. 그렇기에 부지런히 지나온 어제들을 쌓아가는 사람들의 지나온 기억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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