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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통

다시 만난 세계, 고3에게 바치는 헌정

by 사이언스토리텔러 2022.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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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데뷔 15주년을 맞은 소녀시대가 'FOREVER 1'으로 컴백을 했다. 15년이란 긴 세월 동안 큰 구설수 없이 가요계 정상을 찍고, 그 이후 각자의 길에서 커리어를 쌓아가며 아쉬울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팬들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자, 무엇보다 '소녀시대'에 대한 진심이 한결같음을 보여주기 위해 무대에 얼굴을 비추었다. 하물며 대한민국의 명실상부한 걸그룹도 이처럼 본업에 진심인데, 과연 지금의 나는 그들만큼인지 묻게 된다.

https://youtu.be/AdjhDjKbcUg

나태함과 무기력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나만의 노하우가 있다. 그건 바로 가수들의 데뷔 무대를 보는 것이다. 문득 그녀들의 15년 전 데뷔 무대가 보고팠다. 동작이 큰 안무들을 재빠르게 칼각으로 합을 맞추면서도 자기 파트에서 음정을 정확히 찍어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얘네들은 아가미라도 달렸나.. 언제 숨을 쉬지?"란 생각에 내가 숨쉬기 힘들어졌다. 무엇보다 반짝이는 눈빛, 거기에 서려있는 '반드시 뜨고야 말겠다!'는 간절함과 그 열정을 가늠하노라면 자못 숙연해지면서 저절로 내 안의 게으름을 반성하게 된다.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지마"

임용 수험에 실패해 인생이 끝난 것만 같은 패배감과 우울함이 날 감싸돌 때 친구와 무안 바다에 간 적이 있었다. 그곳은 온갖 잡생각을 상쇄시켜줄 쌀쌀한 겨울 공기와 거센 풍랑이 산적했던 인적 드문 곶이었다. 큰 파도가 거세게 밀려오면 거대한 바위에 부딪혀 굉장한 소리가 났다. 그러나 바위는 이에 아랑곳없이 제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험에 떨어지는 것 같은 고민은 이 얼마나 작은 것인가.", "어떠한 풍파를 겪고도 흔들리지 않는 바위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우리가 걸어갈 길이 매사 꽃길이면 좋겠지만, 눈앞에 선 현실은 어찌나 거칠고 황량한 길이던지.. 한때는 "이 길만 지나면 꽃길만이 가득하겠지."란 생각으로 삶의 지난함을 견뎌냈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인생이란 게 그렇게 하나의 에피소드로 엔딩 크레딧을 올리기에는 시시콜콜하지 않더라. 오히려 끝났다 싶으면 다시 시작되는, 질릴 정도로 반복되는 시리즈물에 가까웠다. 인생은 결코 단조로운 심심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많은 시즌, 그 속의 수많은 에피소드의 대물림으로 이루어져 있는 복잡다단한 다이내믹함이었다. 성공이라는 파고와 그에 못지않은 실패의 파저로 굴곡진 내 인생의 다이내믹함은 수많은 도전이라는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흔적이었다. 이처럼 도전이 멈추지 않는 한,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될 인생 기복의 요동이라면 그에 동요될 이유가 뭐가 있겠냐는 '초연함'은 단연코 내 본연의 역량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생의 스토리 라인 곳곳에 깔려있었던, 가령 무안에서의 에피소드와 같은 떡밥들을 먹고 성장한 것이었다.

하고많은 떡밥 중에 무안에서의 에피소드를 곱씹으며 이런 자조 짙은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데뷔 무대였다. 올해 고3을 맡으며 커리어적으로 자존감이 많이 떨어지고 교직에 대한 열정이 희미해지던 와중에 영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녀들의 정열은 잊고 있었던 과거, 무안에서 꿈꿨던 세계, 교사가 된다면 진심을 다해 가르치겠다는 간절했던 나를 다시 만나게 해 주었다. 138억 년이라는 아득한 시간에 숨어온 빅뱅이라는 기적이 '우주 배경 복사'란 잡음으로 드러났듯이, 때로는 흩어져 버린 과거의 슬픈 시간이 잡음처럼 들려오면 현실의 냉소에 아랑곳없이 그때의 진심을 떠오르게 해주는 기적과도 같은 특별함을 마주하게 된다. 그녀들이 노래하듯이 특별한 기적은 기다리는 게 아니다. 기적은 이미 현실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고, 그걸 찾아내는 건 온전히 스스로의 몫이다.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한때 내가 거쳐갔던 길을 부단히 걸어가고 있는 고3 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안쓰러우면서도 갸륵하다. '대입 수능'이라는 큰 과업을 앞두고 학창 시절의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는 그들에게 힘겹고 어려운 시간이 이어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고단한 시간, 어쩌면 지금까지 경험한 적 없는 가혹한 나날들은 오롯이 나 스스로와의 치열했던 사투였기에 지독히도 외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내 꿈, 나 스스로에 대한 진심을 지켜내기 위해 외롭게 버텨왔을 찰나의 인고는 고독히 빛나는 영원의 별이 되어 앞으로 숱하게 방황하게 될 미래의 나에게 방향키 역할을 해줄 것이다. 그렇기에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맑은 하늘을 떠올리는 것에 가까운 지극히 어려운 일이지만, 희미한 꿈일지라도 가슴에 품고 끝까지 나아갔으면 좋겠다.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내가 지나온 찰나의 희미함을 쫓아가다 보면 그 빛이 영겁을 밝히는 찬란함이었다는 기적과도 같은 특별함을 마주했으면 좋겠다. 나 스스로에 대한 진심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러분의 오늘을 응원한다. 그 진심으로 말미암아 NUMBER 1을 넘어서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나 자신만의 FOREVER 1이 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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