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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토리텔링

바코드와 선 스펙트럼

by 사이언스토리텔러 2021.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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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힘, 관계

"사람 셋이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의 삼인성호(三人成虎)는 "거짓말도 여럿이 하면 곧이곧대로 들린다."라는 말이다. 이렇게 3명이 모이면 소문을 만들어낼 수가 있다. 

 

보통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3명이 되면 사람들 관심을 끌고 그 행동에 동참할 수 있게 만든다.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실험을 보도록 하자.

https://youtu.be/HzD-rSBZFWQ

 

이 실험이 시사하는 바는 굉장히 다양하지만 나는 '한 사람이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관계가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두고 싶다.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아니 아무것도 없다. 

세상을 바꾸는 진짜 영웅은 한 사람이 아니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나타난 후에야 세상이 바뀌기 시작한다. 만약 그들이 한 사람을 따르고 나서지 않았다면, 예를 들어 대로에서 하늘을 가리키며 보는 사람이 단 한 사람뿐이었다면, 그는 우리 주위의 수많은 또라이 중 하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게 된다.

이처럼 둘의 관계가 셋의 관계가 되고, 넷의 관계가 되어 수많은 관계가 맺어질 때에야 비로소 세상은 바뀌기 시작한다.

(좌) 헬렌켈러와 설리번 (우) 허준과 유의태

관계는 한 사람의 세상, 가치관과 인생관을 바꾸기도 한다. 누구를 만나서 함께 하느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고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 관계를 통해 한 사람의 세상이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시간은 3분 정도면 충분하다. 중독성 있는 훅과 주옥같은 벌스만 있다면...


"검은 줄들의 모양이 다 다르긴 해도 삑 소리 나면 우리 모두를 빛으로 비추겠지"

(하온)

행복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어디에도 없으며 동시에 어디에나 있구나

우린 앞만 보고 살도록 배웠으니까

주위에 남아있던 행복을 놓쳐 빛나지 못하는 거야

 

(빈첸)

네까짓 게 뭘 알아 행복은 됐어

내 track update 되는 건 불행이 다 했어

잠깐 반짝하고 말 거야 like 바코드 빛같이

우리도 마찬가지

 

김하온, 빈첸 - 바코드中 

https://youtu.be/YLAKEOW8HB8

<고등래퍼 2> '멘토 콜라보 배틀 무대'에서 이른바 역대급 레전드 무대라는 평가를 받으며, 객원 심사위원과 관객들에게 전체 최고점을 받은 김하온과 빈첸의 '바코드 (Prod. GroovyRoom)'는 두 고등학생이 주고받는 대화를 가사로 편집하여 랩핑한 곡이다.

검은 줄 하얀 줄 제각기 줄 모양과 색깔이 다른 바코드, 이를 비춰주는 빛이 있듯이 너와 나 우리가 모두 다름에도 서로를 함께 비춰주는 빛이 있기에 세상을 좀 더 밝게 살아볼 수 있지 않겠냐는 하온의 메시지로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빈첸의 태도에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는 내러티브는 '바코드'라는 노래만의 매력이지 않나 싶다.

 

이처럼 한 사람의 세상, 더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관계'의 진정한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관계'라는 토양에서 피어나는 '변화'라는 싹은 무엇을 자양분 삼아 자라날 수 있는 걸까? 바로 '협력'이다.

관계를 맺어주는 협력

호모사피엔스는 다른 종과 달리 긴밀하게 협력하며 관계를 맺는다. 보통은 DNA가 다르면 협력을 아니 하지만, 호모사피엔스는 DNA가 서로 달라도 협력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5,000만 명의 호모사피엔스가 모여 국가를 이루고 있고, 지구 전체로 보면 75억 명이 인류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다른 어떤 동물이 만든 체계보다 이 체계가 우월한 것은 우리 가운데 단 하나의 개체라도 똑똑하면 그 결과물을 모두가 누릴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뉴턴'이라는 개체 하나가 깨달은 F=ma라는 방정식을 인류 전체가 누릴 수 있듯이 말이다. 더 나아가 호모사피엔스는 상호 협력에 기반하여 하나의 개체가 깨달은 지식을 수정·보완하며 발전시키기도 한다.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

대표적인 예로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가 있다. 지금의 주기율표는 빈자리 없이 빽빽하지만, 초창기 주기율표는 휑했다. 작성 당시 원소 54개가 전부였다. 지금은 118번까지 있다. 사실 원래 우주에는 94번까지 밖에 없었다. 95번부터는 인간이 원소 만드는 원리를 깨닫고 후대에 전수하며 하나씩 만든 거다.

 

우주가 138억 년이라는 장구한 시간 동안 드넓은 공간에 존재하면서 빅뱅과 초신성 폭발 등을 겪으며 94개의 원소를 만들었던 반면, 우주의 역사에 비하면 찰나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시간 동안 실험실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118번까지의 원소 그 나머지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호모사피엔스는 정말 대단한 존재이다. 그들은 협력에 기반한 '관계의 힘'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빛을 밝힘으로써 스스로를 드러내는 원자

원자의 선 스펙트럼

다양한 원소들을 쉽게 구별하는 방법이 있을까? 원소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우 작지만, '선 스펙트럼'을 활용한다면 시각적으로 쉽게 구별할 수 있다.

 

2021.08.17 - [2021 물리학1] - 보어의 수소 원자 모형(에너지 양자화와 선스펙트럼)

 

보어의 수소 원자 모형(에너지 양자화와 선스펙트럼)

https://gooseskin.tistory.com/202 전기력과 쿨롱 법칙 학습 목표 전자가 원자에 속박되어 있음을 전기력을 이용하여 정성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핵심 키워드 조직도 ※학습 목표 및 핵심 키워드 조직도

gooseskin.tistory.com

각 원자마다 원자핵의 전하량이 다르고, 그에 따라 전자의 수도 제각각이다. 그러다 보니 정상 궤도들의 상태도 원자마다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원자마다 고유한 정상 궤도들을 가지게 되며 그에 따라 전자 궤도 전이 시 방출되는 빛이 해당 원자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여실히 드러내는 속성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원자는 빛을 방출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선 스펙트럼으로 나타낸 주기율표

이처럼 원자의 선 스펙트럼을 통해 물질을 구성하는 다양한 원자의 종류들을 식별할 수 있다. 이를 활용해 신소재나 신약의 분자 구조, 별의 구성 물질 등을 연구할 수 있게 됐다.

"삶이란 흐르는 오케스트라 우리는 마에스트로"

하얀 바탕에 세로로 그어진 다양한 검은 줄로 이루어진 바코드, 얼핏 보면 원자의 선 스펙트럼과 비슷해 보인다. 바코드엔 해당 상품의 정보가 입력되어 있다. 이 정보는 빛을 비춤으로써 드러나게 된다. 스스로 빛을 밝힘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원자와 달리, 바코드는 누군가가 비추는 빛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빈첸)

비틀비틀거리는 걸음이 나다운 거 같아

깊은 늪에 빠져있는 게 훨씬 자연스러워 난

 

(하온)

비틀비틀거리다가 떠난 이들의 뒤를 따를 수도

뒤를 잇는 것이 아닌 그저 잊는 힘을 기른

나는 기를 쓰지 않고 만들어 믿음뿐인 길을

 

넌 갈 수 있어 지평선 너머의 미지의 곳으로

삶이란 흐르는 오케스트라 우리는 마에스트로

 

김하온, 빈첸 - 바코드中

 

오케스트라는 다양한 악기가 한데 모여 연주하는 형태를 말한다. 협주로 맺어진 다양한 악기들의 관계 속의 질서와 균형은 오케스트라를 아름다운 선율로 흐르는 큰 악기로 만든다. 우리의 삶도 흐르는 오케스트라와 같다. 지나가버린 과거, 다가올 미래, 그리고 현재, 즉 다양한 시간의 편린 속 '나'들이 맺는 관계 속 질서와 균형이 내 삶을 흐르게 한다. 

 

비틀비틀거리는 자전거가 쓰러지지 않으려면 계속 앞을 보며 페달을 밟아 나가야만 하며 그 과정에서 자전거의 균형이 맞춰진다. 그동안 지나버린 길을 스치며 따라오는 바람에 땀을 훔치며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인생도 그렇다.

 

하온은 빈첸에게 과거에만 너무 매몰돼있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동시에 우리에게도 말하고 있다.

지나가버린 과거를 잇지 말고 잊는 힘을 길러 더 나은 미래가 오리라는 믿음이라는 길을 힘차게 달려 나가면 내 인생의 균형도 자연스럽게 맞춰지지 않을까라며 말이다.

원자 선 스펙트럼을 통해 행성 수성의 구성 물질을 파악할 수 있음

똑같은 세로줄이지만 바코드 선은 색깔이 없고, 스펙트럼 선엔 각 원자만의 고유한 색깔이 입혀져 있다.

수동적으로 읽히느냐, 능동적으로 자기를 드러내느냐의 차이가 색의 유무가 결정되듯이 내 삶에 능동적이어야 내 인생에도 나만의 고유한 색이 입혀지지 않을까?


다양한 악기들의 협주 속 관계의 균형을 조율하여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마에스트로처럼 내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관계의 균형을 조율하여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지휘하는 능동적 주체는 나 자신이어야 한다. 어느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내 삶의 마에스트로가 되어야 나만의 고유한 빛깔이 삶 속에 묻어 나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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