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업식을 하루 앞두고 아이들에게 교과서와 성적표를 배부하던 그 날은 눈이 매섭게 왔다. 정신없이 바빠서 그랬을까? 매서운 칼바람과 함께 하얀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바깥 풍경이 굉장히 정신 사나워 보였다. 그렇게 마지막인 듯 마지막이 아닌 마지막 같은 애매모호한 날을 보내고 다음 날.
그 날은 너무나 푸른 하늘의 맑은 날이었다. 파란 하늘을 유랑하는 하얀 구름이 전날의 휘몰아치는 하얀 눈보라와 대비되면서 유달리 예쁘게 보였다. 이런 날 서로 아쉬운 인사하고 사진도 찍고 그랬으면 좋았을걸...
3월에 그랬던 것처럼 그 날도 아이들은 학교를 오지 못했다.
결국 마지막 인사마저도 비대면으로 해야만 했었다.
파란 하늘에서는 떠 다니는 구름을 볼 수 있지만
파란 바다에서는 떠 다니는 구름을 볼 수 없다.
파란 물이 담긴 어항 속에서 구름을 보는 것만큼 영화 같은 순간이 있을까?
고개를 치켜들면 흔하게 볼 수 있는 구름과 같은 사소한 무언가가 귀한 것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연.
인연이야말로 어항 속의 구름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우연을 가장한 인연이란 말이 있듯이 인연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 불현듯 우연처럼 다가온다.
하늘을 떠 다니는 지극히 평범한 구름을 보듯 사소하다 치부해버려 구름처럼 하얗게 아스러져 간 인연이 됐을 우연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반성하게 된다.
뭐가 됐든 끝을 마주하면 응당 또 다른 시작도 같이 오기 때문에 시작의 설렘과 끝의 아쉬움이 공존하기 마련이지만, 2020년은 유난히 끝의 아쉬움이 더 큰 한 해였다.
앞으로는 우연처럼 만나게 될 아이들이 나에게 귀한 인연이 될 수 있고 반대로 그들에게 내가 귀한 인연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더 감사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인연의 소중함을 잊지 않고
어항 속의 구름을 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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