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볼과 평행우주론 [삶의 자세]
프리더와 싸운 후 평화로운 나날이 지속되지만 손오공은 심장병을 앓게 되고 그때 당시에는 심장병을 낫게 할 약이 개발되지 않아 손오공은 결국 죽고만다. 그 이후 레드리본군의 인조인간들에 의해 오공 무리는 모두 죽게 되고 오반마저도 인조인간에게 죽임을 당해 트랭크스와 부르마만 남은 어두운 미래가 전개된다.
이 암흑의 미래가 지겨웠던 부르마는 타임머신을 개발하여 트랭크스를 과거로 보내 죽기 전 오공에게 심장병을 낫게할 약을 전해줄 계획을 세운다. 계획대로 오공은 낫게 되고, 그 덕분에 바뀌게 된 새로운 우주는 비록 셀과 마인 부우같은 생채기를 겪지만 알다시피 평화롭고 아름다운 결말로 마무리된다.
그렇지만 미래의 트랭크스가 살던 우주는 변함이 없다. 죽었던 오공과 오반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다만 인조인간과 셀이 없어졌기 때문에 그들만의 평화로운 또 다른 우주가 열리게 된 것이다.
드래곤볼에는 설정상 네 가지 우주가 존재한다.
첫 번째 심장병 때문에 손오공이 죽게 된 그 이후 인조인간에 의해 무참히 파괴된 우주
두 번째 심장병이 낫게 된 오공이 셀과 마인부우를 겪으며 비로소 평화를 찾게되는 드래곤볼z의 우주
세 번째 미래의 트랭크스가 죽어야 할 손오공을 살리게 돼서 첫 번째 우주가 틀어지게 돼 셀이 탄생하게 된 새로운 우주
네 번째 셀에게 살해당할뻔한 미래의 트랭크스가 사건의 전말을 알아차려 셀을 죽이고 진정한 평화를 찾은 37편 엔딩 이후의 우주
사소한 선택으로 너무나 결이 다른 다양한 우주가 나온다는 설정은 평행우주론을 연상시킨다. 처음에 손오공이 부르마를 만나지 않아 드래곤볼의 존재를 몰랐었다면, 사이어인이었던 손오공을 손오반이 주워다 기르지 않았다면, 손오공이 피콜로를 죽여버렸다면 정신적 지주로서 피콜로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오반이 있었을까?, 손오공이 키드 부우에 의해 지구가 폭발되기 전 사탄이 아닌 자기 친구들을 데리고 순간이동을 했다면?
곱씹어보면 내 인생엔 여러 선택지가 놓인 순간들이 참 많았었다. 내가 마주했던 과거의 상황에서 그때의 선택이 아닌 다른 선택을 했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우주가 만들어졌을 것이고, 그런 우주가 정말 어딘가에(설명되지 않은 어딘가에, 가령 차원이라든지)있을 것만 같고, 그 우주에 살고 있을 또 다른 내가 존재할 것만 같다는 기묘한 생각이 든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과거의 내 선택에게 감사한 생각도 들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모르는 수많은 우주 중에서는 분명 지금의 꿈을 이루게 된 또 다른 '나'가 살고 있는 우주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어떤 현명한 선택을 해야 그 우주의 또 다른 '나'가 될 수 있을까? 스피노자의 철학은 그러한 물음에 힌트를 제공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스피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의 모든 사건은 필연적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엮여 있다. 따라서 우리가 그런 사정을 알든 모르든 사건들은 필연적 관계에 따라 진행된다. 따라서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정해져 있다면, 우리가 그걸 걱정하든 안 하든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결정론적 입장은 비관적으로 해석하면 답도 없다. 뭘 해도 멸망할 세상인데 사과나무를 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를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왜 그는 세상이 멸망해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을 했을까?
사과나무를 심는 현재의 순간이 멸망하게 될 미래보다 훨씬 더 가치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안달복달해도 소용없기에, 담대함과 냉정함을 유지하며 그저 자기가 해야할 일을 묵묵히 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말 한마디이지 않을까?
나무가 나기 위해서는 나무를 심어야 한다. 세상이 멸망하든 안하든 나무가 자라기를 원한다면 일단 나무를 심어야 한다. 즉, 내가 어떤 결과를 원한다면 이것 저것 따지지 않고 결과에 대응되는 원인 행위를 해야 한다. 그래야 원인과 결과 사이에 '필연적' 관계가 생길 거고, 그 필연적 관계가 만들어져야 내가 원하는 결과에 한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또 다른 우주 속 이상향 '나'와 연결되는 키는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삶의 자세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