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기초 {기본량, 유도량, 측정 표준}
너 자신을 알라.
이 고대의 문장은 우리가 무엇을 알기 시작할 때, 자연스럽게 우리의 경험과 사유의 경계가 조금씩 넓어져 간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인간은 유구한 과거를 반성하고, 또 무한한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경이로운 지적 능력을 지닌 존재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 끝을 가늠할 수 없기에 그 가능성 또한 무한한 것이겠지요. 그것은 우리 각자가 작은 우주이기 때문 아닐까요? 인류의 세계관 확장에 기여한 과학 발전의 서사 그리고 그와 같은 결을 공유하는 삶의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게요.
판서 조직도
1. 측정
1) 규모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은 중력 이론의 배경이었던 달과 지구처럼 규모가 큰 거시 세계와 반도체의 전기적 성질을 설명하는 원자의 구조처럼 규모가 작은 미시 세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범위의 자연 세계는 시간과 공간의 범위를 구분 짓는 규모로 표현됩니다.
미시 세계의 시공간 규모 | 거시 세계의 시공간 규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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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 원자의 반지름: 약 0.05 nm(나노미터)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도는 데 걸리는 시간: 약 150 as(아토초) |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 약 33만 4000 km 달이 공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 약 27.3일 |
2) 측정 방법의 개선
사람들은 다양한 시간 규모와 공간 규모의 자연 세계를 자신이 경험한 범위에서 설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① 과거의 측정 방법
과거에는 해, 달 등 천체의 주기적인 현상을 이용하여 앙부일구와 같은 도구를 개발한다든지, 진자의 주기적인 현상을 이용하여 하루, 한 달, 일 년 등 거시 규모의 시간을 측정하였습니다.
여러분의 허리는 몇 인치인가요?
요즘에도 허리둘레의 단위로 인치(inch)를 많이 사용하는데요. 인치는 엄지손가락 너비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처럼 옛날에는 신체 일부의 길이를 이용하여 길이를 측정했어요. 그 후 눈금이 표시된 자를 이용하여 거시 규모의 길이를 측정했습니다.
측정과 어림
측정 | 어림 |
도구를 사용하여 어떠한 양을 재는 활동 | 도구 없이 어떠한 양을 추정하는 활동 |
② 현대의 측정 방법
에라토스테네스는 기하학을 이용하여 지구의 크기를 측정했지만, 현대의 인류는 인공위성을 이용하여 지구의 크기는 물론 지구가 자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합니다. 이처럼 현대에는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다양한 도구나 방법이 개발되어 시간 규모나 공간 규모의 측정 범위를 획기적으로 넓힐 수 있게 됐어요.
세슘 원자에서 나오는 빛의 진동수를 토대로 시간을 정밀하게 측정한 인류는, 초고속 투과 전자 현미경을 개발하여 그 시간의 규모를 더욱 미세하게 쪼개어 원자나 분자 내부의 움직임을 관찰합니다. 이러한 정밀한 시간 측정 기술을 토대로 인류는 빛의 왕복 운동을 이용해 길이 또한 정밀하게 측정하고요. 이러한 시공간의 정밀함이 집약된 기술의 총체가 바로 GPS입니다.
시간 오차 1초가 야기하는 거리적 오류는 얼마나 되나요?
GPS(Global Positioning System)는 4개 이상의 위성들 각각이 주고받는 빛 신호를 토대로 특정 위치를 알아내는 기술입니다. GPS의 위치 계산은 위성들이 주고받는 신호의 시간 계산에 전적으로 의존하다 보니 시간이 조금이라도 틀리면, 그만큼 거리가 크게 틀어집니다. 시간 오차 1초만 생겨도 발생하는 거리 오류가 30만 km일 정도로요. 그렇기에 GPS가 허용하는 시간적 오차는 약 ±10 나노초 정도입니다.
뭐?!! 중력의 세기와 움직이는 속력에 따라 시간의 흐름이 변한다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중력이 강하고 빠르게 움직일수록 시간은 느리게 갑니다. GPS 위성은 지구 표면으로부터 약 2만 km 높이에 떠 있어서 중력이 약한 데다, 약 14,000 km/h의 빠른 속력으로 지구를 돌고 있기 때문에 GPS 위성과 지구 표면에서의 시간에 간극이 생기기 마련인데요. 무려 38.5 μs(마이크로초)입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짧은 시간이라서 무시해도 되지 않을까 싶겠지만, 이 시간 오차가 낳는 거리적 오류는 무려 11.5 km나 됩니다.
그래서 GPS 위성 시계에 상대론적 보정값을 미리 넣어 놓아서 지상 수신기가 정확히 위치를 계산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요. 요컨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없었다면 GPS 기술은 무용지물입니다.
과학자들은 자연의 미시 세계와 거시 세계를 대상으로 끊임없이 시간과 공간을 측정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원자 내부의 운동을 분석하고, 전자의 이동이 만들어내는 반도체의 전기적 성질을 이해하며, 수천 킬로미터 너머에 있는 달의 움직임까지도 수치로 기술할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이 정량적 측정의 체계화 덕분이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인간의 감각으로 포착할 수 있는 직접적 경험의 한계를 뛰어넘어,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세계의 범위를 물리적으로 확장시켰죠.
하지만 각 지역과 학문 분야에서 측정 기준이 제각각이라면, 축적된 지식은 소통되지 못하고, 기술은 전파되기 어려우며, 협업 역시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과학이 확장시킨 세계관은 자연스럽게 국가와 문화, 시대를 넘어서는 보편 단위, 즉 도량형의 통일로 이어졌고, 이는 미터법을 포함한 국제단위계(SI)의 탄생을 이끌어 냈습니다.
2. 단위와 측정 표준
뭐?!! 천하를 다스리는 비결에 단위의 통일이 있다고?!!
중국의 진시황제가 춘추전국시대를 끝내고 천하를 통일한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도량형을 통일한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지역마다 길이, 무게, 부피의 단위가 제각각이었어요. 이로 인해 일반 상거래 활동뿐만 아니라 세금 징수와 같은 국가 운영에서도 비효율이 높았죠. 도량형이 통일되면서 중국의 농경과 물자 생산의 효율은 크게 향상됐습니다. 이는 만리장성 축조의 원동력이 됐다고도 평가받고 있어요.
과학 탐구에서 일관된 단위로 측정하고 결과를 정리하면 다른 장소에 있는 과학자들이 동일한 현상을 측정할 때 같은 결과를 얻고, 상호 교류와 이해를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과학 기술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더 나아가 산업 기술의 표준을 마련하는 데 유용하게 이용되고 있는 기준화된 단위계에 대해 알아봅시다.
1) 기본량
자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물리량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양으로써 국제단위계(SI)는 기본량의 단위로 7개의 기본 단위를 정의했습니다.
기본 상수와 기본량
국제단위계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기본 상수를 구하는 실험 방법을 사용하여 기본량의 단위를 정의했습니다. 기본 상수란 자연에서 항상 일정한 양을 가지는 물리량입니다. 빛의 속력, 기본 전하, 플랑크 상수, 아보가드로 상수 등이 해당돼요.
시간과 원자 | 1초: 세슘 원자에서 나오는 빛이 9,192,631,770번 진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 |
길이와 빛 | 1m: 빛이 진공에서 1/299,792,458초 동안 진행한 거리 |
질량과 플랑크 상수 | 1kg: 플랑크 상수에 기반하여 정의한다. |
온도와 볼츠만 상수 | 1K: 볼츠만 상수에 기반하여 정의한다. |
전류와 기본 전하 | 1A: 기본 전하에 기반하여 정의한다. |
물질량과 아보가드로 수 | 1mol: 아보가드로 수에 기반하여 정의한다. |
광도와 빛 | 1cd: 특정 빛을 특정 방향으로 방출할 때 복사 세기의 기준에 따라 정의한다. |
2) 유도량
기본량으로부터 유도된 물리량으로 단위는 기본량의 단위를 조합하여 사용합니다.
단위의 접두어 기호
3) 측정 표준
측정 표준이란 어떠한 양을 측정할 때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단위에 대한 기준입니다.
① 측정 표준의 변화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측정 표준은 점점 정밀해졌어요. 길이의 경우, 과거에는 지구의 북극에서 적도까지 길이의 천만 분의 1을 1m라 정의하고, 이를 측정 표준으로 활용하였지만 현재는 빛이 진공에서 1/299,792,458초 동안 진행한 거리를 측정 표준으로 활용합니다.
질량의 경우, 과거에는 백금-이리듐 합금의 질량을 1kg라 정의하고, 이를 측정 표준으로 활용하였으나 현재는 빛의 에너지와 관련된 플랑크 상수를 이용한 값을 측정 표준으로 활용합니다.
② 측정 표준의 활용
우리나라는 온도를 ℃ 단위로 측정하여 체감 온도가 33℃ 이상인 상태로 2일 이상 지속되면 폭염주의보를 발령하고, 자동차의 제한 속도를 km/h 단위로 안내하여 과속 차량을 단속하고, 미세 먼지의 시간당 평균 농도가 150㎍/㎥ 이상인 상태로 2시간 이상 지속되면 미세 먼지 주의보를 발령합니다. 또한 원자의 크기와 우주의 나이 및 발사체 연구 등에 측정 표준을 활용하며, 소리의 세기를 dB 단위로 측정하여 공사장의 소음 등을 규제합니다. 이처럼 측정 표준은 일상생활, 과학 기술, 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유용하게 활용됩니다.
측정 표준이라는 건 사회적 합의에 의해 어느 정도 다듬어진 틀과도 같아요. 자연이 우리에게 보내오는 정보가 그 틀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다듬어진 형태가 되어야 하겠죠? 자연의 정보를 가공하기 위한 기술적 합의에 대해 알아봅시다.
3. 신호와 정보
"살짝 아픈 것 같다"는 감각이 37.2℃로 정확히 측정되며, 바람은 느끼는 것이었다면 이제 그 바람의 세기 및 방향을 기록하고 예측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문명의 감각이 정교해진 비결은 무엇일까요?
1) 디지털 신호
자연은 끊임없는 연속의 흐름, 아날로그 신호로 가득 차 있습니다. 바람의 세기, 심장 박동, 빛의 밝기, 소리의 높낮이와 크기까지 모두 연속적인 물리량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 무한한 연속성을 직접 다룰 수 없기에 센서를 통해 자연의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전기 신호)로 변환하여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뭐?!! 지금은 구석기 시대가 아닌 규석기 시대라고?!!
우리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IT 기기의 중요성과 동시에 그 안에 들어가는 반도체의 재료가 규소라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지금 우리는 규석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렇다면 반도체는 어떤 특성을 지녔기에 규석기 시대를 장악한 핵심 아이템이 되었을까요? 그 답은 바로 디지털(=이진법)에 있습니다.
반도체를 활용한 다이오드는 전류가 흐르냐(1), 안 흐르냐(0)를 결정짓는 스위치 같은 역할을 해요. 그래서 전자회로에서 다이오드를 이용해 신호를 0과 1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즉, 다이오드가 전류를 한쪽으로만 흐르게 해주기 때문에 전기적 신호를 0과 1로 깔끔히 구분할 수 있고, 이것이 디지털 이진법 신호의 기본을 만들어 주는 거예요.
2) 디지털 정보와 현대 문명
이러한 디지털 변환을 통해 인류가 누리게 된 대표적인 혜택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정밀성과 안정성의 획득
디지털 정보는 수치적으로 표현되므로 데이터 손실 없이 정밀하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디지털 체온계는 미세한 체온 변화도 수치로 표현하며, 이 정보는 저장·전송이 가능해 장기적 추적이 용이합니다.
② 데이터의 저장과 전송 용이
디지털 정보는 컴퓨터나 네트워크를 통해 쉽게 저장·분석·전송됩니다. 스마트 워치가 측정한 심박수나 수면 패턴은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전송되고, 이는 의료진이 원격으로 건강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데 활용됩니다.
③ 자동화와 인공지능의 기반 마련
공장의 생산 라인에서는 센서가 기계의 컨디션을 측정해 디지털화하고, 이 데이터는 인공지능이 분석하여 이상 징후를 사전에 감지합니다. 농업에서도 토양 습도와 일사량을 감지하여 자동으로 물을 주거나 비닐하우스를 개폐하는 스마트팜 기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④ 감각의 확장
센서와 디지털 기술은 인간이 느끼기 어려운 미세한 자극까지 탐지하고, 이를 보이게 만들어 줍니다. 적외선 센서는 어둠 속에서도 체온을 감지하고, 지진 센서는 땅속 깊은 떨림을 미리 감지합니다. 인간의 오감이 닿지 못하는 세계를 기술은 감지하고 기록합니다.
⑤ 창조와 예술의 진화
악기의 아날로그 소리는 디지털화되어 음악 편집 소프트웨어에서 섬세하게 다듬어지고, 복제되고, 새로운 창작물로 태어납니다.
디지털 기술은 금융, 교육, 운송 및 교통, 의료, 에너지 산업 등 사회의 여러 분야에 영향을 미쳐 다양한 방식으로 현대 문명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빅데이터, 사물 인터넷, 인공지능 등의 기술이 발달하면서 디지털 기술은 현대 문명의 많은 영역에 걸쳐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고 있으며, 새로운 형태의 의사소통, 협업, 문제 해결을 가능하게 하고 있어요. 이처럼 자연의 신호를 디지털화하는 과정은 단순한 변환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감각을 확장하고, 삶의 질을 고양하며, 미래를 예측하고 창조하는, 새로운 감각 기관을 얻는 일입니다.
소우주(MikroKosmos) - BTS
https://www.youtube.com/watch?v=I50U0YzpXyM&list=RDI50U0YzpXyM&start_radio=1
과학 기술의 발전 및 측정 표준을 토대로 마이크로 단위의 미시 세계에서 코스모스라는 거시 세계까지 섭렵한 인류는 소우주, Mikrokosmos 그 자체입니다. 소우주인 인간은 각자의 자리에서 홀로 빛나기에 고독한 존재지만, 그렇기에 독보적인 존재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밤하늘이 이토록 아름다운 건 저 별빛도 불빛도 아닌 우리 모두가 빛나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시간이 흘러 여러분은 대학에 가고, 사회에 나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상대방의 기준을 내 기준으로만 재단하거나 섣불리 평가하는 데 그치지 않길 바랍니다. 각자의 기준을 깊이 품어보세요. 그리고 서로에게 맞는, 함께의 기준을 조율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보세요. 그것이 결국 나의 세계관을 넓히는 지혜입니다.
우린 우리대로, 우리 그 자체로 빛나는 소우주입니다. 누구의 기준이 맞다, 틀리다를 따지기 전에 서로를 존중하며, 우리만의 공통의 약속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과학과 기술이 확장시킨 경험과 측정의 보편화란 것도 결국 우리 인간이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함께 협력하며, 더 넓은 세계를 지혜롭게 탐구하기 위해 만들어 가는 공통의 약속이었듯이. 오늘도 물리를 통해 인생을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