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물리학] 소재 물리 {반도체, 초전도체, 그래핀, 레이저}
판서 조직도
문명의 발달과 궤를 같이하는 소재의 발달
세상에는 세 종류의 자원이 존재합니다. 원재료(=소재), 에너지 그리고 지식이죠. 원재료와 에너지는 고갈돼요. 반면 지식은 성장합니다. 지식은 사용하면 할수록 늘어나요. 더욱이 지식의 총량을 늘리면 그 지식은 우리에게 새로운 소재를 줍니다.
고대 사람들은 자연에서 얻은 물질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모양을 변형하여 사용했습니다.
이후에 불의 사용법을 터득한 인류는 물질의 성질을 변화시켜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어요. 진흙에 열을 가하여 토기를 만들거나 광석에 열을 가하여 청동이나 철을 얻었죠. 지식의 확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이처럼 문명의 발달은 새로운 종류의 소재를 발견하게 해주었습니다.
과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고도의 문명을 이룩한 인류는 기존 물질의 원소 결합 구조를 변경하여 기존 물질보다 더 뛰어난 성질을 가지거나 새로운 성질을 가지는 물질, 신소재를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1. 기존의 소재를 변형한 신소재
1) 불순물 반도체
전류를 한 방향으로만 흐르게 해주는 다이오드와 LED 및 트랜지스터에 이용됩니다. 스마트 기기에 들어가는 CPU, GPU 등의 칩들은 트랜지스터가 모인 집적 회로라 보면 돼요.
지금은 규석기 시대
20세기, 원자와 고체라는 무미건조한 물체에 대한 연구가 없었다면 반도체는 존재할 수 없었고, 반도체가 없었다면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비롯한 IT 기기는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을 겁니다.
우리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IT 기기의 중요성과 동시에 그 안에 들어가는 반도체의 재료가 '규소'라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지금 우리는 규석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렇다면 반도체는 어떤 특성을 지녔기에 규석기 시대를 장악한 핵심 아이템이 되었을까요? 그 답은 바로 디지털(=이진법)에 있습니다.
반도체와 이진법
반도체는 회로에서의 전류의 흐름 여부를 정보의 최소 단위인 0과 1의 비트로 표현하여 저장하거나 제어합니다. 이로써 반도체는 정보를 저장하고 연산을 수행하는 일종의 두뇌 역할을 함으로써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비롯한 IT기기, 냉장고나 세탁기를 비롯한 생활 가전과 자동차까지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2) 초전도체
아주 강한 자기장을 만들어내려면 그만큼 많은 열을 감당할 전선이 필요합니다. 현실 속의 전선은 많은 전류를 흘리면 녹아버려요. 초전도체로 코일을 만들면 이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초전도체는 임계 온도 이하에서 전기 저항이 0이 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에 강한 전자기적 상황을 연출할 수 있습니다. 이를 활용한 의료기기가 MRI입니다. 더불어 임계 온도 이하에서 반자성체가 되는 초전도체의 성질을 활용한 것이 자기 부상 열차입니다.
초전도체와 힉스 매커니즘
본래 질량이 없는 광자가 초전도체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 질량이 유한해진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로 인해 초전도체만의 독특한 특질이 발현되는 게 아닐까요? 그렇다면 광자가 초전도체 속에서 몸이 무거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본래 질량이 없던 광자가 초전도체 속에서 질량을 얻게 되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면 온 우주에 있는 전자, 양성자, 중성자 같은 입자가 질량을 갖게 되는 힉스 매커니즘에 대해 더욱 정확히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대한민국의 도약, 양자컴퓨터와 초전도체
양자컴퓨터는 ‘꿈의 컴퓨터’로 불려요. 신약 개발을 비롯해 인공지능, 획기적인 신소재 개발 등에서 현재 슈퍼컴퓨터보다 수십만 배 이상 빠른 연산이 가능하여 IT 산업의 판도를 뒤흔들 '게임 체인저' 기술이 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인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굴지의 IT 기업들이 뛰어들어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죠.
이름이 양자컴퓨터라서 양자역학이 적용되는 컴퓨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기존 컴퓨터에도 양자역학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양자컴퓨터는 기존의 컴퓨터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컴퓨터는 정보의 최소 단위인 0과 1의 비트를 전류와 전압으로 표현해 저장하거나 제어하는 장치인데, 저장 및 제어 역할을 하는 핵심 소자가 바로 '반도체'입니다. 기술이 개발됨에 따라 반도체의 크기는 센티미터(=100분의 1m) 단위에서 점점 작아지더니 이제 나노미터(=10억 분의 1m)까지 작아졌죠. 디지털 정보는 0과 1이 분명해야 하는데, 매우 작은 나노 세계에서는 '불확정성 원리'를 비롯한 양자 현상에 의해 0과 1의 구분이 불분명해지면서 디지털 정보 처리에 애로사항이 발생합니다. 그러한 구조적 한계를 역으로 이용해 데이터를 저장 및 처리하는 장치가 바로 양자컴퓨터인 셈이죠.
기존 컴퓨터는 0 아니면 1의 값을 갖는 비트 단위로 정보를 처리하지만, 양자컴퓨터는 0과 1이 동시에 될 수 있는 ‘큐비트(qubit)’ 단위로 연산합니다. 여러 연산을 병렬적으로 처리하는 이런 특성에 힘입어 연산 속도가 슈퍼컴퓨터보다 수백만 배 이상 빨라질 수 있어요. 이러한 양자역학적 중첩, 큐비트를 구현하는 데에는 전기 저항이 없는 '초전도 상태'가 필요하기 때문에 양자컴퓨터는 극저온에서 보관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그 누구도 감히 예상할 수 없었어요. 무릎 위의 양자컴퓨터, 손바닥 위의 양자스마트폰을.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가능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발견됐습니다. 바로 2023년의 대한민국에서.
https://www.youtube.com/shorts/tGCZwJMC_KM
3) 그래핀
그래핀은 사실 우리 주변에 많이 있어요. 특히 연필의 흑연에 다량으로 들어 있죠. 그래핀(Graphene)은 '흑연(Graphite)에서 생겨난 탄소 화합물'이라는 뜻입니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현미경으로 보면 흑연은 여러 겹의 탄소 원자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중에서 한 겹의 원자층으로 된 것이 바로 그래핀이에요. 만약 1mm의 두께로 만들려면 약 500만 개의 그래핀을 쌓아야 해요. 초창기에 그래핀은 흑연이나 탄소 나노 튜브 등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일종의 모델로써 이용되고 있었습니다. 계산해 보니 여러 모로 흥미롭긴 한데 실제로 만들지는 못할 거라는 의견이 대세였어요. 일반적으로 2차원 결정은 불안정하기 때문이죠.
그런 와중에 2004년, 안드레 가임이 스카치테이프를 사용해서 처음으로 흑연에서 그래핀을 분리해 내는 데 성공합니다. 스카치테이프에 흑연을 붙인 후 테이프를 붙였다 떼었다 한 뒤 두께를 확인한 결과, 뜬금없이 단일 원자 두께의 그래핀이 분리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 거죠. 정말 터무니없이 단순한 원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골 때리는 건, 그래핀을 합성하기 위한 테크니컬한 방법이 수없이 개발됐지만 테이프로 붙였다 떼는, 소위 날로 먹는 테이프 신공으로 추출된 그래핀이 그 어떤 방법으로 만드는 그래핀보다도 질적으로 우수하다는 것입니다. ㄷㄷㄷ
그래핀의 활용
흑연에서 그래핀을 떼어내는 것이 뭐가 대단하냐는 의견도 있는데, 그래핀 자체의 가능성은 매우 무한합니다. 일단 0.2나노미터 두께로 엄청 얇지만 강철보다 200배 단단하기 때문에 초경량 고강도 소재로 활용될 전망입니다. 전기 전도도와 열 전도도 또한 우수해서 기존의 반도체가 갖는 발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또한 그래핀은 이론물리학자들에게 좋은 떡밥이 되기도 해요. 그래핀 내의 전자가 빛처럼 행동해서 상대론적인 효과를 편하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죠.
상대론적 효과를 검증하기 위한 저렴한 소재, 그래핀
전자처럼 질량이 있는 입자라도 엄청나게 큰 운동량을 갖고 움직이면 마치 질량이 없는 입자처럼 거동하긴 합니다.
아인슈타인의 에너지 공식에서 운동량 값이 엄청나게 커진다고 가정하면 앞쪽에 등장하는 (mc)라는 숫자는 있으나마나 한 미미한 숫자가 되기 때문이죠. 거대 입자가속기 시설에서는 전자를 어마어마한 빠르기로 움직이게 만들 수 있습니다. 다만 돈이 많이 들어가요. 본래 상대론적인 운동을 하지 않던 입자를 강제로 질량이 있으나마나 한 상대론적인 운동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려면 많은 투자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래핀 속의 전자는, 분명 질량이 유한한 입자임에도 불구하고, 입자가속기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저절로 상대론적 거동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래핀 속의 전자가 빛만큼 빨리 움직이는 것도 아니에요. 대략 빛 속력의 1/100 정도로,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천천히 움직이는 전자가 어떻게 상대론적으로 거동할 수 있을까요?
그래핀은 의료 분야에서도 활용 가치가 있어요. 아주 작은 원자와 분자도 투과할 수 없도록 막거나 걸러주기 때문에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등 미생물을 막아낼 것으로 전망합니다. 또한 수소 분자 분리나 해양 오염물질 제거 등 여러 분야에서의 필터로써 활용 가치가 있죠.
그래핀의 응용 가능성이 무한하나 당장 가시권에 있는 분야는 디스플레이입니다. 그래핀은 높은 강도에도 불구하고 매우 유연하기 때문에 잘 휘어지고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터치 스크린과 플렉서블 액정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요.
으라차차 - 럼블피쉬
https://www.youtube.com/watch?v=BD1vBKdL3AA
깃털보다 가볍고 강철보다 단단한 역설의 신소재, 그래핀
그래핀은 가벼움과 단단함이라는 대조적인 성질을 지니고 있어요. 이러한 성질들은 서로 견제하고 조화를 이루어 그래핀을 지구상 최강의 소재로 만들죠. 이러한 특성은 단지 그래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에서도 가벼움과 단단함이 서로 조화롭게 배치될 때 더 멋진 삶이 관찰됩니다. 실패가 짓누르는 삶의 무게는 가볍다는 듯이 훌훌 털어버리고, 어떠한 고난과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갈 길 가는 단단함으로 무장한 채 으라차차 힘을 내어 보아요 우리.
2. 레이저
보어와의 극렬한 반목으로 유명했던 아인슈타인. 의외로 보어의 원자 모델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반응은 괜찮았습니다. 수소 원자에 관한 분광학 실험 결과를 기막히게 잘 설명하는 모델이라면 굳이 안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죠. 아인슈타인은 보어 모델을 출발점으로 몇 가지 유익한 상상을 덧붙입니다.
만약 그의 상상이 맞다면 원자 세계에선 다음과 같은 기이한 상황이 벌어져야 했습니다. 두 손에 장난감을 잔뜩 쥔 아이한테서 그 장난감을 뺏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아이 눈앞에 새로운 장난감을 흔들어주면 됩니다. 아이는 그 장난감 하나를 얻기 위해 손에 쥐고 있던 장난감 전체를 방출합니다. 비유하자면 광자 무리는 위 상태에 있는 원자를 살살 약 올려서 그 원자로 하여금 광자 하나를 내놓게 만듭니다. 광자 개수가 하나 더 많아진 만큼 무리가 불어난 광자는 더욱 효과적으로 다른 원자를 공략해서 광자를 빼낼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원리를 잘 이용한다면 '광자 증폭기'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죠. 우리가 레이저라고 부르는 기계는 바로 이런 원리로 만들어졌습니다.
레이저는 복사의 유도 방출에 의한 빛의 증폭, Light Ampl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이라는 뜻의 영어 줄임말입니다.
1) 레이저의 원리
① 원자들을 펌핑하여 E3 준위로 올립니다.
② E3 준위에 있는 원자들은 자발적으로 아주 빠른 시간 안에 E2 준위로 내려옵니다. 이를 '자발 방출'이라 합니다. 이때 E2 준위에는 원자들이 머물러 있는 시간이 다른 준위들에 비해 길어요. 이런 준위를 '준안정 준위'라 합니다.
③ 'E2-E1'의 에너지를 갖는 빛을 쬐어주면 이 빛이 E2 준안정 준위에 있던 원자들로 하여금 E1으로 전이되게 하는 마중물 역할을 합니다. 이런 과정을 '유도 방출'이라 해요. 좌우에 빛이 왕복할 수 있는 장치를 설치하면 광자들이 왕복하면서 유도 방출의 빈도가 늘어나고, 그만큼 빛의 세기가 증폭됩니다. 이 증폭된 빛이 레이저예요.
④ E1 준위에 있는 원자는 아주 빨리 E0 준위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야만 N2>N1인 상태가 유지되어 유도 방출이 연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거든요.
2) 레이저의 특징
① 단색성: 여러 잡다한 파장이 섞이지 않고 오로지 하나의 파장만이어서 빛이 하나의 색으로 구현됨
② 고도로 결맞는 빛: 빛들의 위상차가 없음
③ 거의 퍼지지 않음: 매우 멀리까지 진행할 수 있음
④ 고강도: 빛의 세기가 매우 큼
3) 레이저의 활용
레이저는 산업, 의료, 농업, 건설, 극장, 통신 및 무기 등의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더불어 아인슈타인 자신의 또 다른 이론, 보스-아인슈타인 응축 현상을 관측하기 위해 레이저가 동원됩니다. 루비듐 가스를 절대영도 근방까지 낮추는 극한 환경의 구현에 레이저가 필수입니다. 그의 또 다른 위대한 예언, 중력파를 검증하는데 필요한 장비 역시 레이저였습니다.
아인슈타인은 플랑크 이론의 최대 수호자이면서 동시에 최대의 수혜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플랑크의 제안이 담고 있는 함의를 집요하게 파헤침으로써 광양자론을 도입했고, 광전 효과를 설명했고, 유도 방출의 원리를 발견했습니다. 광양자론과 광전 효과는 그가 노벨상을 받은 직접적인 원인이죠. 유도 방출 원리는 20세기 후반 레이저의 발달과 레이저를 기반으로 한 무수한 과학 발전의 토대가 됐습니다. 그 영향력을 놓고 본다면 유도 방출 원리 발견은 또 다른 노벨상 감이었어요. 아인슈타인이 놓친 노벨상은 특수상대성이론, 일반상대성이론만이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