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각통

몰입(Flow)

by 사이언스토리텔러 2021. 4. 30.
728x90
반응형
728x170

드래곤볼 초반 손오공의 전투력은 10에 불과했다. 거대 원숭이가 되면 끽해봤자 1000을 우회하는 정도의 하급 사이어인이었다. 아무리 높게 잡아도 전투력 1300의 라데츠보다는 한 수 아래였다.

그랬던 손오공이 엘리트 사이어인 베지터를 압도하게 된다. 라데츠와의 전투 이후 계왕의 특훈을 받고 열심히 수련에 매진하던 손오공은 매 전투마다 베지터의 전투력을 앞서게 된다.

손오공은 기본 피지컬이 썩 훌륭한 편이 아니었지만, 결국에는 엘리트를 넘어서는 아주 멋진 모습을 보여준 나의 영웅이자, 나에게 희망을 안겨준 캐릭터다. 선천적인 재능을 막론하고, 노력만으로 엘리트 못지않은 기량을 뽐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전투력 1000에 못 미쳤던 손오공이 엘리트를 능가하여 독보적인 존재로 거듭날 수 있었던 비결엔 어떤 것이 있었을까? 손오공은 이기기 위해서도 아니고, 지지 않기 위해서도 아닌 그저 그 순간을 즐기기 위해 전투 자체에 몰입하며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다.

 

즉, 손오공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자신의 업(業)을 일치시킨 '덕업일치'의 표본이었다.


업(業)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인생

나의 업(業)인 '교직 생활'은 지금 나의 최애, 더 나아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으로 자리잡았다. 내가 내 일을 이렇게 사랑하게 될 줄이야... 과거엔 생각지도 않았고, 감히 상상조차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원래부터 교사로서의 가치관이 뚜렷하지 않았고, 사명감도 없었다. 그저 학교란 돈 벌기 위해 가는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은 나를 위한 시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시간이 버려지는 거 같았다. 학교에 가기 싫은 건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물론 지금도 훌륭한 교사라 말하기에 부끄러운 점이 너무나 많지만, 적어도 이것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돈 벌기 위해서만 학교를 가지 않는다. 내가 학교를 가는 이유는 학생에게 지적이고 정신적인 멘토가 됨으로써 학생 스스로 통찰과 직관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함이다. 때론 그러한 과정에서 학생과의 의미 있는 상호 작용과 피드백은 나에게 '지적 영감'이라는 귀중한 양식을 안겨 준다. 난 그 양식을 먹고 이전보다 더 성장할 나 스스로를 꿈꾸게 된다.

 

즉 나에게 학교란 곳은 나 스스로의 자아를 실현하는 장소이자, 그런 과정에서 학생과 함께 성장하는 배움의 공간이 되었다. 학생을 위한 일이 나를 위한 일이고, 나를 위한 일이 학생을 위한 일이란 걸 깨달은 이후로 학교에 있는 대부분의 시간은 버려지는 시간이 아니라, 나를 계발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주체적인 시간이 되었다. 내 업(業)이 곧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 곧 내 업(業)이라는 생각은 감사하게도 학교 가는 게 좋고, 학교에서 애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한 교사로 만들어 주었다.

나도 손오공처럼 '덕업일치'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었다.

몰입(flow); 인생이 행복하게 흘러가는(flow) 비결

내가 이렇게 바뀔 수 있었던 계기는 뭐였을까? 고민해봤다. 사실 삶 자체가 바뀐 건 없었다. 단지 삶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만이 바뀌었을 뿐이다. 당장 눈 앞에 놓인 현실과 타인에 우선하느라 항상 뒷전이었던 나 자신이 사실 너무나 연약하고 불안한 존재였음을 알려준 건 '독서와 글쓰기'였다. '독서와 글쓰기'는 나 자신을 알아가려는 시도 그 자체였고, 동시에 나를 보살폈다. '독서와 글쓰기'는 밖으로 흩어져 있던 시선과 에너지를 나 자신에게 집중시키고, 나를 감싸는 공간과 시간을 온전히 내 편으로 만들어주는 힘을 길러주었다.

 

'독서와 글쓰기'는 현실에 안주하는 나를 채찍질하고, 동시에 현실에 힘들어하는 나를 보듬어주었다.

느린 생각과 진지한 사유를 통한 자기반성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주었다. 세상엔 도전할만한 것으로 가득하고, 도전이 꼭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적 결과만으로 나타나지 않더라는 깨달음은 '독서와 글쓰기'가 알려준 고마운 교훈이었다.

'독서와 글쓰기'는 '나'라는 사람이 정체되어 있지 않고 흘러가는 물임을 알려주었다. 난 스스로가 확고히 정의되는 무언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난 흘러가는 물이었다. 같은 시간과 공간에 머물러 있지 않은 채 유랑하는 방랑자지만, 동시에 깊고 넓은 대양을 향해 흘러가는 여행자였다. '독서'는 나의 흐름과 결이 맞는 방향을 제시해주는 나침반이고, '글쓰기'는 그 모든 과정을 기록하고 점검하는 항해일지였다.

 

학생들 각자 흐르는 방식과 흘러가는 길이 다 다를테지만 저마다 품고 있을 깊고 넓은 대양이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고, 그 깊고 넓은 대양으로 보다 현명하게 흐를 수 있도록 마중물이 되고 싶은 생각으로 전부터 써왔던 글과 사유를 짜깁기하여 '사이언스토리텔링'과 같은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어 블로그에 게재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불특정 다수와 가르치는 제자들이 내 글을 볼 생각에 너무 겸연쩍고 민망했지만, 아주 감사하게도 많은 학생과 네티즌의 긍정적인 피드백 덕분에 글쓰기가 즐거워졌고,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책을 더 많이 읽게 되고, 공부를 더 하게 되는 선순환 고리가 만들어졌다. 이 모든 과정을 수행할 때 모든 걸 잊고 순간에 '몰입(flow)'하여 현재에 집중하며 더없이 행복해지는 나를 마주하게 됐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이런 거였구나.'라는 걸 알게 됐다. 행복의 길로 흘러가는(flow)방법이 '몰입(flow)'임을 알게 된 것이다. 

"너의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한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공들인 시간 때문이야."

소중한 것들은 원래부터 그만큼 소중했던 게 아니다. 어린 왕자의 장미꽃도 그 자체가 유일무이한 존재라서 소중한 것이 아니다. 그만큼 어린 왕자가 애정을 가지고 꽃을 보살핀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소중한 존재가 된 것이다. 내게 '교직 생활'도 그렇다. 교직 생활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던 건 '독서와 글쓰기'를 통한 자아 성찰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학생들에게 좀 더 좋은 교사가 되고자 하는 나의 의지가 '사이언스토리텔링'과 같은 구체적인 콘텐츠로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엔 '몰입(flow)'이 있었다. 그에 비견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기에 '교직 생활'은 내게 '어린 왕자의 장미꽃'과도 같아졌다.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을 쓴 장유승은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결정하는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특별한 존재와 평범한 존재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존재 자체의 가치가 아니라 관계다."

잘 알기 위해서는 서로 관계가 있어야 하고, 그 관계 속에서 존재의 의미라는 싹이 발아하기 위해선 '애정'이라는 자양분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좋았고 소중했던 무언가였지만, 시간을 들이지 않고 관심을 주지 않아 아무 것도 아니게 되었던 것들이 참 많을 것이다. 그 무언가가 물건일 수도 있고, 연인일 수도 있고, 과거의 꿈과 열정일 수도 있다.

우리가 해야할 일, 공부를 비롯한 수많은 (業)과 꿈은 그 자체로도 소중하고 숭고하지만 애정과 노력 그리고 시간을 뿌려주지 않으면 금방 시들어 버리는 꽃과도 같다. 

여러분의 깊고 넓은 바다가 품고 있을 소중한 (業)과 꿈이 심연에 가라앉지 않고 태양처럼 떠올라 찬란히 빛날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나의 노력과 애정 그리고 시간이 필요하다. 바다로 침잠하지 않기 위해선 손과 발을 열심히 써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의 애정과 노력이 깃들어져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해진 (業)과 꿈은 태양처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밝게 비춰줄 것이고, 그러함에 따라 삶을 더 열심히 살게 되는 선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며 '덕업일치'의 삶이 완성된다. 그러면 누구나 손오공처럼 인생이 '업'그레이드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는 여러분에게 하는 나의 조언이자 동시에 나 스스로에게도 하는 주문이기도 하다.

 


에필로그

슬로싱킹 - 황농문

'슬로싱킹'이란 책을 읽고, 책에서 소개하는 공부 방법과 삶의 습관이 여러분에게 너무나 도움이 될 거 같아서 내용 소개와 함께 책을 추천하는 글을 쓰려고 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전혀 다른 성격의 자기 고백 및 반성의 글이 나오게 됐다.

 

'슬로싱킹'은 '몰입'에 대한 저자의 철학과 어떻게 하면 '몰입'을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 책이다. 1학기 중간고사를 준비하느라 고생했을 여러분이 여유의 달 5월을 맞아 자기를 되돌아보고 재정비하는 현명한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슬로싱킹'이라는 책을 추천한다.

 

※이렇게 말해도 안 읽을 거 같아서 '슬로싱킹'에서 발췌한 좋은 습관과 공부 방법※

더보기

1. 자는 시간이 곧 복습하는 시간

더 많은 학습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선 잠부터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장기간 효율적으로 몰입하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해야 하므로 잠을 줄여서는 안 된다. 하루 6~7시간은 꼭 자고, 그래도 부족하면 7~8시간을 자도 좋다. 잠이 부족하면 집중이 잘 안 되고 몰입도를 올리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집중을 가능하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이 잠을 잘 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만일 공부하는 시간이 지옥 같다면 가장 큰 원인은 수면 부족일 것이다.

 

깨어 있을 때 뇌는 쉴 새 없이 입력되는 외부 자극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다 밤에 잠이 들면 비로소 낮에 단기기억으로 저장하고 있던 것을 정리하고 통합한다. 기존 다른 기억과의 관련성을 검토하여 중요한 경험은 장기기억으로 보내고, 중요하지 않은 경험은 폐기하는 것이다. 공부든 운동이든 악기 연습이든 잠을 충분히 자지 않으면 뇌에서 이를 장기기억으로 보내지 못하기 때문에 실력이 향상되지 않는다. 진짜 학습은 낮이 아니라 밤에 우리가 잠을 잘 때 시작되는 셈이다. 따라서 잠자는 시간을 시간 낭비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낮에 학습한 내용을 잠자는 동안 힘들이지 않고 공짜로 복습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2. 20분의 선잠 습관화

 

앞서 강조한대로 선잠은 슬로싱킹의 핵심이자 몰입도를 올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므로 공부나 생각을 하며 졸릴 때마다 선잠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책상에 앉은 채로 엎드려 자는 게 좋다. 아예 눕는 자세를 취하면 선잠이 아니라 깊은 잠을 자게 되어 도리어 몰입도가 떨어지고 컨디션이 나빠지니 주의한다.

선잠 횟수는 하루 5번도 좋고 10번도 좋다. 정상적인 선잠은 20분을 넘기지 않고 저절로 눈이 떠진다. 선잠을 자려다 1시간 넘게 잤다면 평소 수면이 부족했다는 증거다. 이처럼 앉은 자세로 깊은 잠을 자고 나면 컨디션은 조금 나빠지지만, 이럴 땐 너무 자책 말고 몰입을 위해 부족한 수면을 보충했다고 생각하자. 

10~20분간 선잠을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최대한 이완되므로 기분 전환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게임하기는 휴식이 아니다. 그냥 잠을 자라.

 

3. 하루 30분 규칙적인 운동

 

4. 내가 공부하는 이유 찾기

 

지금 내가 하는 업무나 공부가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것이라고 여겨야 한다. 업무나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명확한 이유를 찾아야 구동력이 커지고 몰입하기에도 유리해진다. 가령 수학 공부를 한다면 수학이, 영어 공부를 한다면 영어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공부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하는 일이 하찮고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몰입하기 어렵다. 무슨 일이든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 생각해보자.

 

 

5. 공부 방법

 

우선 시험에 꼭 나올 만큼 중요한 내용 중에서 자신이 완벽하게 이해하고 암기하지 못한 부분을 빨간색 박스로 표시하고 집중적으로 공부한다. 이렇게 장기기억으로 저장되지 않은 내용을 눈에 잘 띄게 표시해두면 목표가 명확하게 설정되어 몰입하기가 한결 쉬워진다.

두 번째로 공부할 때는 모든 과목의 빨간색 박스 부분을 다시 검토해서 여전히 모르는 부분을 파란색 박스로 표시한 다음 또 집중적으로 공부한다.

 

가령 3개월(15주) 후에 다섯 과목의 시험을 치른다고 하자. 일단 한 과목당 1주씩 빨간색 박스로 표시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부한다. 이런 식으로 하면 5주 후에는 다섯 과목을 한 번씩 공부하게 된다. 그런 다음에는 빨간색 박스로 표시한 부분에서 여전히 모르거나 불확실하게 아는 부분을 파란색으로 표시하고 이를 각 과목당 1주씩 공부한다. 그러면 다섯 과목을 10주 동안 두 번째로 반복 학습한 셈이 된다. 그다음에는 파란색 박스 부분에서 여전히 모르거나 불확실하게 아는 부분을 노란색 박스로 표시하고, 이를 일주일씩 공부한다. 마지막으로는 박스 표시에 개의치 말고 책 전체를 보면서 모르거나 불확실하게 이해한 부분을 보라색 박스로 표시하고, 이를 집중적으로 학습한다. 이런 식으로 장기기억으로 저장되지 않은 부분을 선택해 집중적으로 반복 학습하면 몰입도와 공부 효율이 동시에 높아진다.

반응형
그리드형

'생각통'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소리와 스토리 그리고 발표  (2) 2021.08.26
라일락  (0) 2021.05.09
어항 속의 구름  (2) 2021.02.06
[증류수를 마시면 위험한 이유] 순수에 대한 집착  (6) 2020.12.18
코로나가 앗아간 반쪽짜리 얼굴  (2) 2020.11.29